[우리말 바루기] 주차하나, 주차시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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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명절 때가 되면 시댁이나 친정, 큰집을 찾은 자녀·친척들의 차로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은 붐비게 마련이다. 차를 댈 곳을 마땅히 찾지 못하면 가족을 내리게 하고 홀로 주차할 곳을 찾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때 “먼저 올라가 있어. 나는 얼른 주차시키고 들어갈게”라고 말하곤 한다. 이 말은 어법에 맞는 것일까?

 본인이 직접 차를 몰아 일정한 곳에 세워 두고 들어가려는 상황에선 적절치 못한 말이다. “나는 얼른 주차해 놓고 들어갈게”와 같이 말하는 게 자연스럽다.

 음식점 같은 곳에서 일행에게 “빨리 주차시키고 들어갈게”라고 했다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문제다. ‘주차시키다’와 ‘주차하다’의 의미가 같다고 생각하는 이는 당연히 말하는 당사자가 직접 차를 몰아 식당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둔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두 단어의 뜻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는 주차요원 등에게 주차하게 하고 음식점으로 들어가겠다는 말로 해석할 것이다.

 ‘하다’와 ‘시키다’는 가려 사용해야 한다. ‘시키다’는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게 하다는 뜻이다. ‘주차하다’와 ‘주차시키다’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말하는 본인이 차를 주차한다고 할 때는 “빨리 주차하고 들어갈게”처럼 얘기하는 게 맞다.

 거짓말하다·소개하다·전가하다 등 ‘-하다’형의 동사를 사용할 때 ‘-시키다’형으로 잘못 쓰는 일이 종종 있다. 상대방의 거짓말을 지적하면서 “너는 왜 자꾸 거짓말시키니?”처럼 표현하는 경우다.

 ‘거짓말시키니’는 ‘거짓말하게 만드니’란 의미가 된다. “너는 왜 내가 자꾸 거짓말하게 만드니?”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거짓말의 주체가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상대의 허언을 꼬집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너는 왜 자꾸 거짓말하니?”라고 해야 옳다. ‘거짓말하다’와 ‘거짓말시키다’를 같은 뜻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을 여러분께 소개시켜 드릴게요”라고 하면 어색하다. 말하는 이가 자기 가족을 알리는 것이므로 ‘소개해 드릴게요’로 바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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