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0~2세 무상보육, 감당할 수 없으면 철회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정부가 ‘0~2세 유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 정책을 시행 1년 만인 내년 3월부터 사실상 철회하기로 하고 논란이 됐던 소득 상위 30% 가구를 보육비 전액지원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이는 정부 재정의 한계와 재원을 부담하게 된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발 등을 고려한 용기 있는 선택이다.

 애초 정부는 하위 70%까지만 무상보육을 제공하고 상위 30%는 배제했는데 지난 총선을 앞둔 국회가 혜택 범위를 0~2세 전체로 확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소득이나 실제 수요와 무관하게 보육시설에만 보내면 정부가 보육비를 지원하는 현 제도는 애초 불필요한 복지 수요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전면 무상보육 정책 시행으로 집에서 키우던 0~2세 유아 7만 명이 보육시설로 몰려나오면서 시설과 예산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 이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지자체들이 재원 부족을 이유로 무상보육 포기 선언을 하자 이달 초 중앙정부가 지방 보육료 부족분 6639억원 가운데 66%인 4351억원을 대신 부담하기로 하면서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다. 이렇게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정책을 철회하는 게 당연하다.

 이번 사태는 복지정책 개발에서 타당성·효율성과 재정 마련 방안 등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아무리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추세라고 해도 철저한 사전점검을 통해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복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 사태를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0~2세 무상보육이 지난 총선 공약이라며 연말 예산안 심의 때 개선안을 다시 되돌려놓을 태세다. 국회는 나라 장래를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이 개선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예 실명 투표를 해 국회의원들에게 이름과 정치생명을 걸고 표결에 나서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부도 이번 개선안에 따라 혜택을 보다가 못 보게 된 상위 30%에 대한 설득과 소통을 충분히 하면서 사회적 갈등의 소지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