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한 방에 풀려다가 … 프로포폴 사망 41%가 의료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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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했던 A(43)씨는 2010년 경남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프로포폴 중독 때문이었다. 하루 8시간 이상 프로포폴을 맞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병원 진료가 불가능해져 결국 의사인 부인의 손에 끌려 정신병원까지 오게 됐다.

 그는 중독치료 과정에서 “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2009년 처음 프로포폴을 투약했던 게 화근이었다”고 털어놨다. A씨는 “프로포폴 주사를 맞고 나면 푹 잔 뒤 산뜻하게 깨어난다. 하지만 투약기간이 길어질수록 주사기운이 금방 떨어지고 우울감이 더 심해져 약을 또 놔야 하는 중독 상태에 이른다”고 말했다.

 의료계 종사자 사이에서 프로포폴 중독이 심하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00~2011년 프로포폴로 사망해 부검의뢰가 들어온 36명을 분석한 결과 의료계 관계자가 가장 많은 15명(41.7%)에 달했다. 의사가 4명, 간호사·간호조무사가 9명, 병원 직원이 2명이었다. 국과수 서중석 원장 등은 지난 5월 ‘프로포폴 투여와 관련된 사망에 대한 법의학적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프로포폴로 사망한 의료계 관계자는 주로 마취약을 많이 사용하는 성형외과·피부과·내과·마취과에서 일했다. 서 원장은 “의료인들이 향정신성의약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프로포폴을 남용하다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2009~2010년 서울대 마취통증의학과에 연구용역을 맡겨 발표한 보고서도 의료인들의 프로포폴 중독 위험성을 제기했다. 용역팀이 2009년 11월 61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마취과 의사 72명을 상대로 ‘주변에 프로포폴에 중독된 의사들이 있느냐’는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7개 병원에서 9명이 중독 수준임을 확인했다. 이 중 2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을지대 조성남(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 산소호흡기와 심폐소생기를 갖춘 시설에서만 사용을 허가하는 등 철저하게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상·손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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