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성폭행 친고죄 폐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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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사진) 대법원장이 현행 형법에 규정된 성폭행 범죄의 ‘친고죄’(피해자의 고소가 없으면 가해자를 기소할 수 없는 범죄)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양 대법원장은 23일 취임 1주년을 맞아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양형 감각이 낮게 형성된 것은 우리 법이 성폭행을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개인적으로 성폭행 친고죄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여성인권에 대해 소홀하던 시기에 형성된 양형 감각에 따라 성폭행 범죄를 부녀자 개인의 법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지만, 성폭행은 전 사회를 어지럽히는 무서운 범죄로 봐야 하므로 친고죄로 유지해야 할 사회적 근거도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2010년 아동과 장애인 대상 성폭행 범죄의 친고죄 조항은 폐지됐지만 성인 대상 성폭행범죄의 친고죄 조항은 아직 남아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사생활과 명예를 보호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형사고소 대신 합의금으로 성폭행 범죄를 면책받는 ‘유전무죄’ 조항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가해자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피해자를 압박하는 ‘2차 범죄’로 이어지기도 했다.

 국회는 최근 성폭행 범죄의 친고죄 조항 폐지를 급진전시키고 있다. 지난 3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국회 차원의 성범죄 대책특위 구성에 합의하고 모든 연령의 성범죄에 대해 친고죄 조항을 삭제키로 했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도 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법무부는 친고죄 폐지에 부정적이었지만 앞으로는 각계 의견을 모아 폐지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양 대법원장의 이날 발언에 대해 “사법부가 국민 법감정과 사회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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