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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지정업소' 믿었는데 하수구 악취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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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잡초뿐인 송도 국제병원 부지 의료관광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영리병원을 설립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의료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시민단체의 여론에 밀려 지지부진하다. 인천 송도의 국제병원터가 10년째 방치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인천시 의회는 이곳에 비영리병원 설립을 의결했다. [송도=김도훈 기자]

#제주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서귀포시 강정포구. 서울에서 내려온 김영범(57)씨 부부는 20일 올레길 7코스 중간에 위치한 S민박집을 찾았다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방 안에 들어서니 화장실에서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며 “서귀포시 지정업소란 말만 듣고 전화로 예약했는데 여기서 어떻게 휴식을 취하겠느냐”며 혀를 찼다. S민박집 앞에는 김씨의 말대로 ‘서귀포시 지정 시설관광안내소’와 ‘무료 통역(Free Interpreter)’이란 표지판이 버젓이 붙어있다. S민박집 주인 윤모씨는 “2002년 월드컵 때 시에서 붙여준 것”이라며 “이후 따로 점검하러 오거나 관리하는 건 없다”고 말했다.

 제주 관광객은 해마다 늘어 지난해 850만 명에 이어 올해는 1000만 명 이상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문단지나 제주·서귀포시의 일부 특급 호텔을 제외하면 숙소라곤 모텔과 민박이 대부분이다. 제주의 전체 숙박시설(2만7017실) 중 모텔과 민박(1만4325실)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최근 시설이 좋은 펜션이 들어서곤 있지만 예약이나 환불 같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 공식적으로 펜션 사업자(478실)로 등록한 곳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H여행사 이대범 제주지사 소장은 “관광객은 느는데 고도제한 등의 규제 때문에 호텔 신규 공급은 수년째 거의 없다”며 “그렇다 보니 예약이나 환불이 제대로 안 되는 민박이나 펜션만 늘어 관광객의 불만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을 기념품도 마땅치 않다. 돌하르방과 감귤 초콜릿, 말뼈 같은 1차 농축산물이 대부분이다.

 #인구 1만1000명의 외진 산촌인 일본 규슈(九州)의 오이타(大分)현. 해마다 4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 비결은 잘 정비된 민박식 전통 숙박 시설 ‘료칸(旅館)’이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정감 있는 마을 만들기’ 조례를 제정해 료칸별로 제각각 운영하던 예약과 숙박 시스템을 정비한 이후 ‘일본식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됐다. 료칸은 일본의 전통적인 의식주 생활문화가 한데 모여 있는 복합공간이다. 독특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일본 동북부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臺)시엔 창업한 지 860년이 된 유서 깊은 료칸 ‘사칸(佐勘)’이 있다. 호텔보다 비싸지만 손님을 마치 에도(江戶) 시대의 쇼군(將軍) 모시듯 하는 서비스로 정평이 나 있다.

 내수가 커지려면 돈 쓸 곳이 많아야 한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막상 지방에 가면 가족 단위 여행객이 쉴 만한 호텔이 별로 없다”며 “놀 만한 곳도 많지 않아 왜 ‘남이섬’ 같은 곳이 하나밖에 없는지 곱씹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 마땅한 관광 인프라나 쇼핑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내국인 수는 증가 추세다. 해외 출국자 수가 2010년 1200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이 지난해 해외에서 카드로 지출한 돈만 9조6000억원대에 달한다. 김정식 연세대 상경대학장은 “해외로 나가는 돈이 는다는 것은 내국인의 오락·문화 등 서비스 산업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걸 의미한다”며 “국내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해외 지출을 국내로 돌려 내수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교육·의료 등의 서비스 산업 육성은 규제와 이익단체의 반대라는 덫에 걸려 있다. 전남과 경남, 부산시 등은 지난해 말 이순신 장군을 테마로 남해안 체험여행 상품을 선보였다. 한려해상공원을 낀 남해안을 도는 15만~16만원짜리 1박2일 상품은 두 달 만에 수도권에서 600여 명의 관광객이 몰릴 정도로 인기였지만 곧 없어졌다. M투어 관계자는 “지자체별로 숙박은 자기 지역에서 하는 일정을 원했지만 정작 관광객들은 마땅히 묵을 곳이 없다는 불만이 컸고 각 지자체도 그린벨트나 자연경관보전지구에 막혀 호텔을 짓지 못했다”고 말했다.

 42만3480명의 초·중·고·대학(원)생이 유학을 위해 해외로 나갔지만 이들을 잡기 위한 교육 서비스는 지지부진하다. 정부는 2009년부터 1조원을 투자해 인천자유경제구역에 1만~1만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유수의 대학 분교 10여 개를 설립하는 글로벌 캠퍼스 유치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현재 개교한 곳은 올해 초 300명의 대학원생을 모집한 뉴욕주립대가 유일하다.

 그나마 초·중·고 유학 수요를 충 족시킬 만한 교육기관은 ‘돈 있는 집 애들만 다닐 것’이라는 비난 여론 때문에 제주 국제학교를 제외하곤 설립이 겉돌고 있다. 의료관광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추진되던 영리병원 설립은 아직 진전이 없다. 정부는 2002년부터 법을 제정해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했지만 의료의 공공성이 훼손된다는 시민단체 등의 반대 여론을 넘지 못했다.

 해외 쇼핑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서울 시내 대형 면세점 역시 2000년 이후 신규 허가가 없다. 시내 면세점은 이용자 수와 매출액 중 외국인 비중이 50% 이상 돼야 새로 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다는 규정을 내세워 관세청이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는 특정 계층의 이익으로 귀결될 것이란 비판에 가로막히곤 했다”며 “서비스 산업이 발전하면 내수도 살고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서경호(팀장)·최지영·김영훈·김준술·장정훈·한애란·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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