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공격의 포문을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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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2국
[제6보 (68~80)]
黑 . 왕시 5단 白 . 이세돌 9단

68로 지키자 69로 틀을 잡는다. 이 정도면 공격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본시 백은 흑▲ 두 점을 고립시키기 위해 좌하귀를 내줬다. 그런데 이제 공격이 안 된다면 그동안의 강경한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혼란'과 '불안감'이다. 중앙 흑이 비록 공격하기 힘든 돌인 것은 분명하지만 완생의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아직 먼 길을 가야 한다. 그때까지 우세한 왕시(王檄)의 입장에선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그게 실수를 유발할 가능성은 의외로 크다. 정상의 승부란 바로 이 같은 심리전이 큰 몫을 차지한다.

백 72. 이세돌 9단은 가운데를 툭 갈라 공격해간다. 중앙뿐 아니라 상변 흑도 은근히 위협한다. 그러나 이건 순전히 분위기일 뿐 상변 흑은 '참고도1'처럼 잡으러 와도 흑2로 붙여 산다. 6으로 두는 수가 기본적인 삶의 맥이다.

따라서 흑은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참고도2' 흑1 정도로 시원하게 뛰어나가면 된다(이게 불안하다면 A로 좁힐 수도 있다). 만약 바둑이 이렇게 전개된다면 이세돌 9단이 제아무리 천하장사라 해도 더 이상 공격 기회를 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지옥의 종반전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75로 들여다 본 수가 불안감이 자아낸 쓸데없는 손찌검이었다. 노타임으로 두던 이세돌이 이 수를 본 순간 판을 노려보며 무섭게 장고에 빠져들었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기회가 왔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는 10분여 만에 손을 빼 76으로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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