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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2집낸 볼빨간 "인생이 바로 야매"

중앙일보

입력

'볼빨간'을 기억하는가. 2년 전 테크노붐과 함께 이박사의 메들리가 한·일 양국에서 각광 받을 무렵, 이미 테크노를 트로트에 접목시킨 음악으로 달파란 등과 함께 자주 거론되던 대중음악가다.

워낙 특이한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게 어렵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을 경험한 이는 소수다. 일단 방송과 무대에선 도저히 만나기 힘든 부류인데다, 정작 본인도 1집 '지루박리믹스쇼'를 단지 5백장만 발매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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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역전타

내 사랑의 설명서를 주세요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5백장을 더 찍긴 했지만, 그나마도 동이나 금새 마니아들의 희귀 소장품이 되고 말았다.

볼빨간이 새 앨범과 함께 돌아왔다. 2집의 이름은 '야매'. '비전문가의 행위' '엉터리' 등을 뜻하는 비속어 제목에서 미리 짐작할 수 있듯 예의 유치찬란한 음악과 서민적인 해학, 과장된 보컬로 무장한, 웃음 없인 들을 수 없는 트로트 앨범이다.

인터넷 방송국 아임스테이션(www.imstaion.com)에서 자신의 프로 '싸롱뮤직' 진행을 마친 볼빨간을 만났다. 훤칠한 키에 큰 덩치, 서글서글한 웃음에서 느끼함의 극치를 달리는 보컬을 연결시기가 쉽지 않았다.

새 앨범에 대해 묻자 복잡할 것도 없는 그냥 '트로트'라고 소개한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인생의 비애를 노래한 트로트 음악입니다. '야매'란 제목도 주류가 되지 못하는 삼류인생을 표현했습니다." 장난끼마저 엿보이는 그의 코믹한 음악이지만 그 속의 메시지는 사뭇 비장하다.

인트로 성의 첫 트랙 '도무지'에 이어 나오는 노래가 '사랑의 스튜디오'. 자신의 짝을 착기위해 TV 데이트프로 문을 두드려 보지만, 고졸에 직장도 변변치 않아 결국 시청자로 남고 만다는 이야기다.

이어지는 경쾌한 트로트 '인생역전타'도 맥을 같이한다. 사회의 변방에서 미래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은 '창공을 가르는 홈런포처험 9회말 인생역전타'를 기대하지만 어차피 벤치대기도 못하는 신세라는 한탄으로 마무리를 한다.

음악적으로도 변했다. '주변친구와 한 번 웃어보자'는 마음으로 만들었던 1집은 흥겨운 리듬의 경쾌한 트로트가 주류. 하지만 이번엔 삶의 애환이 담긴 느린 곡들도 담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많아져선지, 오히려 '슬로우 뽕짝'이 좋아지더라구요." 그래도 트로트 가수들에겐 제대로 된 '트로트'로 비춰지진 않을 것 같다는 질문에도 거침이 없다.

"물론 그런 분들은 되도 않은 놈이 나왔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모조 트로트'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어린 시절 추억을 담아낸 음악을 하고 싶었고, 트로트는 제게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도구죠."

'볼빨간' 음악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향수'다. 볼빨간의 본명은 서준호.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날씬한 고등학교 시절'엔 보컬을 맡았고 이후 드러머로 쭉 그룹 활동을 이어온 록커다.

신촌 클럽 '더블주스'에서 정기 공연을 여는 등 홍대 클럽문화 형성기의 산증인인 그는 하지만 정작 인디록신의 선두주자 클럽 '드럭'이 각광 받기 시작하던 시절은 군에서 보냈다.

제대 후 '카바레' 레이블을 설립, 동료·후배 밴드들의 매니저와 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현재도 모던록 밴드 '줄리아 하트'에서 드럼을 맡아 앨범 준비가 한창이다. '볼빨간'은 서준호가 '카바레'를 통해 처음 선보인 원 맨 프로젝트.

"1집에선 이박사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국보단 일본에서 선보인 앨범들에 더 관심이 갔었는데죠. 특히 보컬을 악기로 활용한 실험적인 시도가 신선했죠. 하지만 이번엔 좀 더 노골적인 트로트를 하려고 노력했죠." 볼빨간이란 예명은 존경하는 테크노 뮤지션 달파란(강기영)에 대한 오마주다.

2년만에 선보인 '야매'의 제작 과정 역시 '야매'에 가깝다. 원래 2집에서 70∼80년대 팝사운드를 선보일 예정으로 곡 작업도 거의 끝냈지만, 자신의 보컬과 맞추기 힘들어서 방향을 급선회했고, 곡 만들기와 녹음을 병행, 5월 한 달 동안 앨범 제작을 끝냈다.

대부분의 곡은 실연보다는 샘플링을 사용해서 만들었고, '난몰라, 정말 몰라' 등 오히려 싸구려 노래방기기의 반주를 재현하려고 애쓴 노래도 있다.

첫 곡 '도무지'는 어린시절 좋아했던 그룹 '백두산'을 샘플링 한 데 이어 보컬 유현상의 목소리까지 흉내낸 곡. 코믹 트로트의 진수를 보여주는 '내 사랑의 설명서를 주세요' 부터 단란주점의 얌체족을 묘사한 '언감 생심'까지 수록곡 전부가 걸죽한 웃음을 자아낸다. '나는 육체의 환타지' 등 1집 히트곡 세 곡도 다시 담았다.

새 앨범은 전작의 인기와, 오프라인 음반사업에도 진출한 소속인터넷 방송사의 지원으로 1집보다는 적극적으로 홍보를 펼칠 예정.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볼빨간의 생각은 다르다.

"기획사에는 미안하지만 1집과 마찬가지로 인기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특별한 활동 계획도 없구요. 그저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앨범에 담아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어서 기쁠따름이죠. 앞으로 당분간은 그룹 '줄리아 하트'의 새 앨범 준비에 치중할 계획입니다."

1집에선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2집에선 특별한 공연 계획도 없단다. "제가 원래 숫기가 없어서요. 그런 보컬을 스튜디오에서 혼자는 해도, 도저히 여러 사람 앞에선 못하겠더라구요."

볼빨간의 음악도 이번이 마지막. 다음 번 개인 앨범에선 60년대 유럽의 무드 경음악을 재현해볼 계획. 물론 과거를 추억한다는 점에선 현재의 트로트와도 일맥상통한다. 아무튼 2집 역시 특이한 음악만큼이나 귀한 앨범이 될 것 같다.

"선율보다는 가사에 담긴 메시지에 주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삼류인생의 비애를 다뤘지만 그런 상황에 있는 분들에겐 용기를, 그렇지 않은 분들에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어렵게 자신의 음악을 접할 '고마운' 팬들에게 고하는 볼빨간의 마지막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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