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융위기 경고 가볍게 듣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과당경쟁으로 금융권 전체가 위기를 맞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금융감독위원장의 입에서 나왔다. 시장원리에 따라 경쟁하는 것이야 말릴 수 없지만 은행이 무너지면 국민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금융권의 과당경쟁 조짐이 보이면 감독 당국이 이번처럼 미리미리 손을 쓰는 게 백번 옳다.

금융회사들이 설치기 시작하면 꼭 뒤탈이 나게 마련이다. 은행들이 대기업에 마구 대출해 주다 외환위기가 터졌고, 카드사들이 길거리에서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뿌린 끝에 카드사태를 맞지 않았던가. 요즘 카드사의 행태를 보면 언제 카드대란이 있었나 싶을 만큼 헷갈린다. 무이자 할부 서비스나 현금 대출 확대 경쟁은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다. 유통업체 사은행사마다 카드사의 무이자 할부와 상품권 제공이 빠지지 않는다. 불과 3년 전 카드사들이 마구잡이 신용대출로 날린 돈은 40조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이 휘청댔고, 우리 경제는 지금까지 내수침체의 몸살을 앓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급증하는 주택담보대출이다. 집값의 40~60%까지만 빌려주도록 한 금감원의 지도방안에 아랑곳없이 지금도 아파트 등기부만 가져가면 저축은행이나 할부금융을 끼고 집값의 80~90%를 대출받는 상황이다. 이러니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지난 4년간 두 배로 늘어 172조원이나 되고, 올해도 5조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만의 하나 금리가 급등해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부동산시장은 물론 금융시장까지 동반 위기에 빠질 공산이 크다. 일본의 예로 미뤄봐도 그 충격은 카드대란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니 금융시장의 경쟁으로 인한 혼란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민 부담으로 오기 때문이다. 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금융회사에는 금감원이 곧바로 적기 시정조치를 내려야 한다. 외환위기나 카드대란도 감독당국의 늑장 대처가 화를 키웠음을 명심해야 한다. 두 차례나 금융위기 설거지에 지친 국민은 더 이상 뒷돈을 댈 여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