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우는 사진 못 찍는다? TV 광고로 편견 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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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오혜원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카메라를 귀에 가져다 댔다. 소리를 듣고 피부로 느끼며 사진을 찍는 모습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렸다. 16~1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최고 광고제 ‘스파익스 아시아’ 필름부문에서 삼성전자 인사이트 캠페인으로 대상 격인 그랑프리를 수상한 제일기획의 광고다. 13세부터 19세까지의 시각장애우 11명이 난생처음 방문하는 제주도의 양떼목장, 새별오름, 감귤농장에서 직접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이 광고의 내용이다. 아미르 카사에이 필름부문 심사위원장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TV광고의 장벽을 허무는 훌륭한 캠페인”이라고 평가했다.

 이 캠페인을 탄생시킨 사람은 ‘칸의 여인’ 오혜원(40) 제일기획 상무·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2006년 세계 최고 권위의 칸 국제 광고제의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올 6월 이 캠페인으로 칸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뒤이어 칸 광고제의 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이번 스파익스에서 광고제의 꽃이라는 필름 부문의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다.

지난 16일부터 열린 아시아 최고 광고제 ‘스파익스 아시아’ 필름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삼성전자 인사이트 캠페인 광고의 한 장면. 한빛맹학교의 한 남학생이 올 1월 말 제주도의 갈대밭에서 바람이 갈대에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일기획]

 삼성전자 인사이트 캠페인은 오 상무가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11월, 사진집을 구경하다 시각장애우가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귀에 가져다 댄 사진을 발견한 것. 그 순간 삼성전자가 출시한 스마트카메라와 시각장애우를 연결한 광고를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 상무를 비롯한 제일기획 팀원 6명이 마음을 모았다. 처음엔 ‘시각장애우들도 쉽게 찍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기능을 갖춘 스마트카메라’라는 컨셉트로 제품 위주의 광고를 만들 계획이었다.

  생각이 바뀐 건 아이들을 섭외하기 위해 서울 수유동의 한빛맹학교를 직접 방문하면서다. 김양수 한빛맹학교 교장은 오 상무에게 “그 광고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다. 한번도 고민해본 적 없었던 문제였다. 오 상무는 즉시 카메라를 팔기 위한 광고 대신 카메라가 아이들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광고를 만들기로 했다. 시각장애우들에게 사진 수업을 받게 하고, 직접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자는 내용이었다. 그날부터 오 상무와 팀원들은 밤을 새워 카메라의 작동 버튼 옆마다 칼로 홈을 팠다. 아이들이 손으로 만져 기능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낯선 캠페인이었지만 이제까지 제품의 스펙을 홍보하는 광고에 익숙했던 삼성전자도 흔쾌히 허락했다. ‘how to live SMART’라는 슬로건으로 브랜드 홍보에 한창이던 삼성전자에 오 상무가 “이제는 무엇을 위해 스마트해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캠페인은 세상에서 카메라로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일”이라고 설득한 덕이다. 그러고는 올 1월 말 11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에 갔고, 이들은 보란 듯이 보석 같은 사진 수천 장을 찍었다. 이 중 18점의 사진을 추려 3월과 8월에 전시회도 두 번 열었다. 사진을 찍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광고는 이제껏 국제광고제에서 늘 박수만 치던 갤러리였던 한국을 모두가 부러워하는 시상식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그랑프리를 받은 지금이 시작이라는 오 상무의 다음 목표는 ‘더 많은 휴머니즘 광고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제품의 스펙 대신 그것이 지닌 가치를 얘기하는 게 전 세계 광고의 추세”라며 “삼성전자 인사이트 캠페인 덕에 ‘시각장애우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인식이 깨졌다. 편견을 깨도록 도와주는 게 기술이 지향해야 할 점이고, 광고는 그걸 널리 보여준다”고 말했다.

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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