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심성 복지공약 걸러낼 제도 만들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조세연구원이 여야가 대선·총선에 내건 복지공약들을 이행하는 데 들어갈 비용을 공개했다. 조세부담률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면 205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102.6%(새누리당)~114.8%(민주통합당)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재정이 망가져 경제위기에 빠진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PIGS 국가들의 평균 국가부채 비율 120%와 엇비슷해지는 셈이다. 조세연구원은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공기업의 재무 개선, 외국환평형기금 등 금융성 채무까지 반영하면 2050년 우리 국가채무는 GDP 대비 최대 156.4%까지 늘어난다고 경고했다.

 이런 재앙을 막으려면 복지를 확대하는 만큼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다. 조세연구원은 2050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유럽연합(EU)이 주문하는 60% 이하로 맞추려면 국민부담률을 현재 25.1%에서 32.5%(새누리당), 34.9%(민주통합당)로 확 끌어올려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국민부담률이 유럽 평균(43.8%)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에선 정치권의 복지공약은 실현 가능성이나 지속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디서 어떻게 세금을 올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정치권이 답해야 할 차례다. 조세연구원은 이에 대해 “보편적 복지에 맞추려면 보편적 증세가 유일한 길”이라 지적했다. 현재 정치권에서 들고나오는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이나 금융소득세 강화로는 어림없다는 의미다. 연구원 측은 가장 시급하게 세부담을 끌어올려야 할 분야로 소비세인 부가가치세를 지목했다. 하지만 조세 저항과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여야가 과연 부가세를 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권이 증세는 외면한 채 ‘저(低)부담-고(高)복지’를 공약하는 것은 우리 경제를 뒤흔드는 위험한 도박이다. 재앙을 피하려면 정치권 스스로 복지공약 남발을 자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회 차원에서 초당적이고 중립적인 공약검증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재원조달 근거가 부족한 선심성 공약들은 과감히 걸러내야 한다. 세금 부담 없는 복지 공약은 한마디로 대국민 사기(詐欺)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