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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에 패션타운? … 역발상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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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마리오 홍성열 회장은 21일 서울 가산동 옛 구로공단 자리에 마리오 아울렛 제3관을 개설한다. 1~3관을 합치면 면적 13만2000㎡(약 4만 평)의 아시아 최대 아웃렛이 된다. [박종근 기자]

㈜마리오 홍성열(58) 회장은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옛 구로공단을 현재의 패션타운으로 변모시킨 인물이다. 그가 마리오 아울렛 1관을 2001년, 2관을 2004년 이곳에 개관한 뒤 구로공단 터는 W몰, 한섬 팩토리 아울렛, 제일모직 아울렛 등이 밀집한 아웃렛 타운으로 바뀌었다.

 홍 회장은 21일 마리오 아울렛 1·2관 옆에 3관을 연다. 3관은 지상 13층·지하 4층, 연면적 5만9400㎡(1만8000평) 규모다. 홍 회장은 3관 개점을 앞두고 지난 14일 가산동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1~3관을 합치면 총 13만2000㎡(4만 평)로 500여 개 브랜드가 입점하는 아시아 최대 아웃렛 타운”이라며 “10여 년을 들인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회장이 이곳에서 아웃렛 타운의 가능성을 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였다. 입주한 공장들이 지방으로 떠나고 공단이 황량하게 변할 무렵이었다. 홍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니트업체 까르트 니뜨를 운영해 보니 재고를 처리할 방법이 부족했고 소비자들도 싸게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궁리 끝에 아웃렛을 생각했다. 일본과 유럽에서 아웃렛이 합리적 소비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점, 구로공단이 공장을 끼고 있어 재고를 싸게 팔기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봤다.”

 근처에 대형 유통시설이 없는 유통 사각지대였다는 것도 선택의 한 이유였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마리오 1~3관을 지을 터를 확보했다. “1관을 짓기 전에 컨설팅을 받아보니 유동인구가 없어 개점 후 5년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라며 주변에서 다 말렸다”고 홍 회장은 당시를 회고했다.

 컨설팅 결과는 기우였다. 마리오가 유동인구를 끌어들였다. 요즘 주중에는 10만 명, 주말에는 20만 명이 마리오 아울렛을 찾는다. 2001년 첫해 500억원이었던 매출은 2004년 1200억원, 지난해 2100억원으로 늘었다.

 패션타운을 완성하기까지 “공장 지대에 유통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는 정부의 규제로 기나긴 줄다리기도 했다. “2004년에 3관을 지으려 2년여간 설계를 한 후 1년을 허가를 얻는 데 보내다 백지화했고, 이번에 다시 3년여간의 설계 작업을 거쳐 3관을 완성한 것”이라고 홍 회장은 말했다.

 그는 스러져가던 구로공단 자리를 되살렸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3관 입구와 옥상에 굴뚝을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을 설치했다. 구로공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건물 외벽에는 마산방직·시대복장 등 공단에 있던 회사들의 이름을 새겼다. 국내 브랜드로 시작한 매장은 3관을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 코치·버버리·마크제이콥스 같은 명품을 파는 매장은 물론 가구와 생활용품·소형가전을 파는 리빙 매장도 갖췄다. 아웃렛 업계 최초의 코스메틱 아웃렛에서는 재고가 아닌 신상품 화장품을 30~50% 싸게 판다.

 마리오 아울렛은 입점 업체로부터 매출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수수료율은 백화점의 절반 수준인 15~17%다. 제품을 싸게 팔려고 수수료를 가능한 한 적게 받는다고 했다. “다른 곳과 비슷한 가격에 물건을 판다는 건 회사 망하는 일이다. 1원이라도 좋은 제품을 더 싸게 팔아야 사람들이 가산동까지 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홍 회장은 “좋은 브랜드를 싸게 사길 원하는 소비자가 늘수록 더 잘되는 게 아웃렛”이라며 “경기 침체기에 매출이 더욱 늘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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