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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한 꺼풀 뒤엔 외로운 소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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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준기

드라마 ‘아랑사또전’(MBC)은 복잡한 이야기다. 벌려놓은 게 많아도 너무 많다. 귀신 보는 사또 은오(이준기), 환생한 처녀귀신 아랑(신민아), 불사를 꿈꾸는 요괴 등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비밀도 복잡하다. 매회 등장하는 반전은 종종 피곤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TV를 켠다. 궁금해서다. 은오와 아랑 커플이 파헤치는 진실, 자신의 ‘근원’을 묻는 이들의 모험 말이다.

 전 재상의 아들이지만 어머니가 노비인 탓에 서럽게 자란 은오. 행방불명된 어머니를 찾아 팔도를 유람하던 그가 엉겁결에 밀양 사또가 된다. ‘불의를 보면 참는’ 은오가 관복을 입은 건, 제 죽음의 진실을 찾겠다고 나타난 아랑을 돕기 위해서다.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다. 어머니의 실종이 아랑과 관련 있어서다.

 아랑에게 은오는 제대로 ‘나쁜 남자’다. 자고로 나쁜 남자의 매력이란, 평소 까칠하게 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순정을 보여주는 것. 아랑은 욕하면서도 은오에게 마음이 간다. 게다가 나쁜 남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치명적인 상처도 있다. 엄마 얘기만 나오면 슬퍼하고 분노하는 이 남자의 아킬레스건은 ‘어머니’다.

 나쁜 남자인 게 은오의 매력이냐 하면, 그게 아니다. 살인자를 제 힘으로 찾겠다고 환생까지 감행한 아랑에 비하면 지질해 보이는 은오. 그를 자꾸 쳐다보게 되는 건, 사실 우리들 대부분이 아랑보다 은오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랑처럼 용기를 내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실제로는 은오처럼, 인생을 지배해온 어떤 트라우마를 부둥켜안고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난 죽어도 엄마처럼 안 살 거야’와 같은 결심처럼 대개가 가족에게서 비롯했다.

 그래서 은오가 부득부득 어머니를 만나 그 응어리를 풀 수 있을까 궁금해하고, 그가 ‘모모(母母)동자’에서 벗어나 그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자칫 산으로 갈 법한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아랑사또전’은 한 편의 미스터리 극이자 은오와 아랑의 러브스토리이며 아직 엄마를 벗어나지 못한 청년, 아니 소년 은오의 성장기다. 소년의 이미지를 품은 청년, 이준기(30)가 적격인 이유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이다. 영화 ‘왕의 남자’ 속 공길은, ‘일지매’의 액션마저 아름답게 소화했었다. 은오가 소년을 벗어나면, 준기도 공길을 벗어날 수 있을까. 역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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