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명의로 개설 기업은행 계좌서 1조 위장거래 정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CBI) 명의의 석유수출입 대금 결제 계좌에서 1조원대의 돈이 위장 거래를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정황을 검찰이 포착해 수사에 나섰다. 이 원화 결제 계좌는 국내 원유수입 결제대금과 국내 업체 중 이란 수출기업들의 대금 지급 업무를 대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우리·기업은행 두 곳에 개설돼 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이성희)는 최근 국내 무역업체인 A사가 2009년 이후 이란에 수출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기업은행에 개설된 CBI 명의 계좌에서 1조900억원을 인출해 해외에 송금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거래 내역 등을 확보해 실제 무역거래가 있었는지와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검찰은 또 한국은행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대외거래 신고 등에 관한 자료를 확보했다. 또 A사와 금융거래를 한 기업은행 측 관계자의 공모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할 방침이다.

 13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2009년 두바이에 A사 사무소를 낸 재미동포 J씨는 지난해 “이탈리아로부터 대리석 등을 구입해 이란에 판매하는 방식의 중계무역을 하겠다”고 관계당국에 신고했다. 대금 결제는 이란 측 수입업체인 T사가 이란의 두 은행에 의뢰하면 이란 은행이 국내 은행에 인출을 요청해 CBI 명의의 원화 결제 계좌에서 A사에 돈을 내주는 방식이다. A사는 이 같은 방법으로 지난해부터 50여 차례에 걸쳐 기업은행의 서울시내 모 지점에서 1조900억원을 인출했다. 이 돈은 곧바로 기업은행의 다른 계좌로 이체된 후 해외 7~8개 계좌에 송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A사는 우리은행에도 접근했으나 우리은행이 실제 물품 거래가 없는 위장 거래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요청을 거절했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전략물자관리원의 확인서와 한국은행의 대외지급 확인서, 해운사가 발행한 선하증권이 갖춰진 거래였으며 이란 측에서도 물건을 받았으니 돈을 내주라는 이란 은행의 지급확인서를 보낸 만큼 돈을 내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