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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때 외국에 팔린 ‘종자주권’ 14년 만에 되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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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환위기로 말미암아 외국 회사에 넘어갔던 흥농종묘·중앙종묘와 이들이 갖고 있던 각종 농산물 종자(種子) 사업권을 국내 기업이 되찾게 됐다.

 동부그룹의 농업부문 계열사인 동부팜한농은 미국 종자업체 몬산토로부터 몬산토코리아 종자 사업권을 받아내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13일 밝혔다. 무·배추·오이·양파 등 8개 종 250개 종자의 사업권을 넘겨받는다는 내용이다. 몬산토코리아가 갖고 있는 310개 종자(12개 종) 중 80%에 달한다. 무·배추·오이는 몬산토가 국내 시장의 25%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 토마토·고추·파프리카와 시금치는 몬산토가 그대로 갖는다. 동부와 몬산토는 계약에 따라 인수 금액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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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종일 동부팜한농 대표는 “무엇보다 종자주권을 일부 회복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 토종 종묘회사들이 외국 업체에 넘어가면서 상당수 토종 농산물 종자까지 외국 회사 소유가 됐는데, 이번 계약으로 웬만큼 되찾았다는 얘기다.

 외환위기 전만 해도 국내 종자 시장은 토종업체의 독무대였다. 흥농종묘·서울종묘·중앙종묘가 1~3위였다. 그러나 이들은 외환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회사채 금리가 연 30% 넘게 치솟자 자금난에 몰린 것이었다.

 자기 추스르기에 정신이 없던 국내 대기업은 이들 종자회사를 외면했다. 결국 외국기업들에 넘어갔다.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는 멕시코 세니미스가, 서울종묘는 스위스 신젠타가, 업계 7위 청원종묘는 일본 사카다가 인수했다. 무·배추·고추 등 토종 채소 종자의 50%가 외국기업 소유가 됐다. 그러면서 국내 채소 종자 시장의 70% 가까이를 외국계가 차지했다. 이후 몬산토가 세미니스를 인수하는 등 외국업체 간 인수합병(M&A)에 따라 토종 종자의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외국기업들은 확보한 농산물 종자들을 국내 농가에 공급하면서 로열티를 받았다. 대체로 종자 판매가의 5~10%를 본사가 로열티로 가져간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토종 농산물을 길러 국내 소비자들이 먹으면서 외국회사에 로열티를 낸 것이다. 청양고추를 먹으면서도 몬산토에 로열티를 물었다. 80년대 들어 중앙종묘가 토종을 개량해 청양고추를 양산했는데, 이 회사가 종내에는 몬산토 소유가 됐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종자업계에서는 “종자주권과 식탁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외국기업으로부터 씨앗을 사서 재배한 토종 농작물을 먹는다는 뜻이었다.

 농촌진흥청 정응기 연구관은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다국적기업들이 한국 토종 작물을 개량해 제3국에 수출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종자 기업과 더불어 종자주권을 잃어버린 결과다.

 2000년대 들어 농우바이오 같은 국내 기업이 선전하면서 현재는 한국 종자회사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절반 가까이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전히 외국기업이 과반인 52%를 차지하는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동부가 몬산토코리아 사업권 대부분을 인수하면서 국내 업체 점유율은 65% 선으로 높아지게 됐다.

 동부 측은 몬산토와 지난해부터 협상을 추진해 계약을 성사시켰다. 몬산토가 거대 시장인 중국에 집중하면서 한국 사업 일부를 정리하려 한다는 정보를 듣고서는 발 빠르게 접촉해 인수에 성공했다. 동부는 몬산토코리아의 해남·고성 농장과 가공·물류센터까지 인수했다. 몬산토코리아는 소유 시설로는 조치원 연구개발 센터만 남겼다.

 몬산토가 이번에 알짜배기 종자는 넘기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토마토와 파프리카처럼 국내에서 키워 수출을 많이 하는 품종은 여전히 끌어안고 있다. 서울대 강병철(식물생산과학부) 교수는 “몇몇 사업권을 넘기지 않은 것은 한 해 32조원에 달하는 세계 종자 시장에서 주요 작물에 대한 주도권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라며 “토종 종자주권을 되찾는 동시에 국내 업체도 전 세계에 판매할 새로운 종자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몬산토

세계 최대 종자회사다. 세계 종자 시장의 27%를 차지한다. 화학기업으로 시작해 1960년대에 종자 쪽으로 사업을 넓혔다. 82년 세계 최초로 식물 유전자 조작에 성공했다. 현재 전 세계 유전자 변형 종자 특허의 90% 이상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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