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교관과 공관 공격은 야만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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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집트와 리비아의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이 11일 각각 시위대와 무장세력에 공격당하고 주리비아 미국 대사가 목숨까지 잃은 것은 외교관과 공관에 대한 명백한 테러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반문명적인 행동이다.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중대 도발이다.

 미국에서 제작된 한 영화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리비아 무장 시위대가 공중으로 총을 쏘며 미국 영사관으로 몰려든 것부터가 국제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외교 관례를 무시한 행동이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같은 이유로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에 난입해 성조기를 끌어내리고 불태운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유를 막론하고 특정 국가에 대한 불만을 이처럼 외교관과 공관 공격으로 풀려고 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1961년 만들어진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국제사회는 외국 외교관과 공관을 보호하고 있다. 외교 공관의 불가침성을 인정하고 외교관의 신분과 신변 안전을 보장한다. 이는 전쟁 시기에도 적용되는 국제 규범이다. 그럼에도 외교관과 공관을 공격해 인명 피해를 낸 행동은 국제사회 게임의 규칙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국제사회가 나서 강력히 규탄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사안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물론 그동안 내부 의견충돌이 잦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까지 이번만큼은 한목소리로 공격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이번 사건의 바탕에는 종교적 자존심, 표현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현저한 시각차, 불안한 치안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의 직접적 요인이 된 이슬람 모욕 논란은 별도의 대화로 풀어야 할 사안이다. 이를 외교관과 공관 공격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이용하려 들어선 안 된다.

 아울러 나라 간 외교관계가 정체마저 모호한 제작자가 만든 허술한 영화 한 편 때문에 위협받아서는 곤란하다. 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비아와 이집트 당국은 범법자들을 신속히 찾아내 처벌하고 외교관과 외교공관이 빈 협약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피해를 본 미국도 이슬람권과의 소통 방법을 찾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