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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경영은 존중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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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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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경영대 교수

경제민주화 바람이 매섭다. 여야 모두 대선 정국을 맞아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삼고 있고, 국회에는 관련 규제 법안들이 제출되고 있다. 사법부 역시 대기업 총수와 임직원들에 관한 각종 재판에서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위의 징벌을 내리는 판결을 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크게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로부터 중소기업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행위의 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지배구조의 민주화’로 구분할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은 일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전부터 논의됐거나 시행되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경제민주화의 바람 속에 ‘재벌 해체’나 ‘재벌 회장 처벌’을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이해하는 인식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돼 있는 주식회사 구조에서 대주주, 즉 대기업 회장은 기업의 손실과 이익에 따른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자리다. 따라서 대주주들은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를 통제하고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빠른 의사 결정과 위험 감수를 통해 최단 기간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것도 대주주 중심의 대기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대기업 총수들의 단골 처벌 조항인 ‘업무상 배임’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업무상 배임’은 기업의 경영적 판단을 위축시킬 수 있고, 또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 활동에 제약이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배임죄를 묻지 않거나 극히 제한적으로만 적용하고 있으며, 경영진의 업무상 배임으로 인해 주주들이 피해를 보았을 경우 형사 처벌이 아닌 민사 소송을 통해 해결한다.

 물론 배임죄가 재벌 형태의 대기업에서 총수의 전횡과 자의적인 경영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재벌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 총수에 대한 배임죄의 경우 명확한 피해나 이득의 규모를 측정하기 힘든 측면이 있어 책임경영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많은 경제·경영학자는 지금의 글로벌 경기나 국내 산업 여건에서 긍정적 지표를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지난달 말 국내 경영학자 400여 명이 참석한 한국경영학회 학술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결의문을 통해 ‘경제민주화보다 시급한 과제가 경제위기 극복’이라고 역설한 참뜻을 새겨보아야 한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도 최근 지나친 경제민주화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일자리 창출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큰 이슈가 되었다. 자칫 시류를 타고 일방적으로 추진될 경우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과도한 규제로 인한 책임경영 회피와 투자 위축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도 멀어진다. 결국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준다.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더라도 책임경영이 존중돼야 하는 이유다.

주인기 연세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