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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 전자통신연구원 여성파워

중앙일보

입력

''차세대보안응용연구부.위성전송방식연구팀.RS(원격탐사)팀.유기광전자소자팀.인체정보기술연구부.MPLS(인터넷기능강화기술)팀…'' .

왠만한 남자들도 접근하기 힘든 첨단 정보기술(IT)의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부서들이다. 하지만 대전 대덕밸리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선 이 부서의 책임자들이 모두 여성이다. ETRI에선 이제 여성들이 첨단 IT연구를 진두지휘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다.

ETRI에서 여성연구원들의 우먼파워는 대단하다. 전체 연구인력의 13%(2백27명)를 차지하고, 박사학위소지자만도 38명이나 된다. 부서장급 이상 여성인력도 11명이다.

대덕밸리 내 어떤 연구소보다 많은 숫자이고, 단일 IT연구소를 놓고 볼 때 선진국과 비교해도 질과 양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ETRI의 자부다.

오길록 원장은 "경박단소(輕薄短小)의 IT분야가 창의성과 유연성이 뛰어난 여성들에게 적합하기 때문" 이라며 "향후 한국 IT산업의 한 축을 틀림없이 여성들이 맡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들 여성군단이 쏟아내는 연구성과도 만만치 않다. ETRI 여성연구원들 중 큰언니격인 김경옥 박사(47.RS팀장)의 연구성과는 제목만 적어도 A4용지 한장으론 부족하다. ''원격영상정보 기반기술개발'' ''공간영상정보 소프트웨어개발'' 등 굵직한 연구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金박사는 현재 대한원격탐사학회 이사 등 외부 일을 맡으면서도 연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연구의 질을 평가하는 잣대인 특허출원 건수도 적지 않다. 현재 나노(10억분의1)급의 미세한 전자소자연구에 매달려 있는 하정숙 박사(39.나노전자소자팀)는 특허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가 지금까지 받은 국내외 특허는 18개. 근무연한으로 나눠보면 1년에 평균 2개씩의 특허를 받은 셈이다.

河박사는 "ETRI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특허를 서너개 이상 가졌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며 "특허취득이 목적은 아니지만 특허가 쌓이면 차세대 기술표준을 주도할 때 큰 힘이 된다" 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ETRI 여성 인력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ETRI에서 만난 여성연구원들은 "공개할 수는 없지만 1년에 서너차례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 드물 것" 이라고 귀띔했다. 대덕밸리 내 다른 연구소의 여성연구원들이 부러워하는 대목이다. ETRI의 여성인력들은 연구에 임하는 근성도 남다르다.

IMT-2000 개발본부의 최인경 박사(41.간섭완화기술연구팀)는 이런 근성 때문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그는 1997년 입사 이후 줄곧 이동통신분야의 통화품질개선에만 매달려 왔다. 崔박사가 미국 오리건 주립대에서 박사(수학)와 포스트닥터 과정을 마친 후 ETRI에서 시작한 간섭완화기술은 휴대폰의 통화음질을 좋게 하고 통신시스템의 효율을 크게 높여준다. 그는 이 일이 좋아 밤샘작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통신업계 사람들이 崔박사의 연구진척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ETRI 여성들은 자신들이 오늘의 위치에 오게 된 것을 자신들만의 공으로 돌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여성들을 핵심연구개발의 중요한 축으로 인정하는 ETRI의 선진국형 근무환경이 크게 기여했다. 여성연구원들은 아울러 남편들의 외조를 일등공신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MPLS응용팀의 양선희 팀장은 복받은 사람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梁팀장의 남편(회로소자기술연구소 엄락웅 박사)도 ETRI에 같이 근무하며 서로를 격려해준다.

이들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같이 공부했던 동창생들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ETRI에 합류했다.

梁팀장은 "간혹 서로에게서 아이디어를 얻곤 하는데 연구분야가 틀린데도 묘하게 의견이 일치할 때가 많다" 고 말했다.

대덕〓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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