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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국책사업…] 5·끝 경영마인드로 만성적자 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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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국책사업의 부실을 막기 위한 대책은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 독립기념관 화재나 신행주대교.성수대교 붕괴 같은 대형사고 뒤에 부랴부랴 나오다 보니 부실공사를 막는 데만 집중됐다. 공사가 끝난 뒤 사후 평가나 흑자 운영 등은 관심 밖에 있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국책사업의 덩치가 점점 커지는 데 맞춰 앞으론 공사만큼이나 사후 평가와 내실 경영에도 역점을 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수요자 입장은 뒷전〓전남 목포와 해남 사이에 자리잡은 대불 국가산업단지. 5천여억원을 들여 여의도 면적의 네배가 넘는 3백50만평을 조성한 지 4년이 흘렀지만 분양률은 30%선을 맴돈다.

6차선의 널찍한 진입로에 공업.생활용수 공급시설과 하수종말처리장까지 갖췄으나 기업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뭘까. 입주 기업이나 근로자들의 업무.생활 환경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던 게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입주 업체들은 말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현주 수석컨설턴트는 "산업단지에는 공장이 저절로 들어서리라는 발상이 문제" 라며 "수요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시설은 외면될 수밖에 없다" 고 지적했다.

◇ 만성 적자 운영=민간자본으로 건설된 인천신공항 고속도로.

당초 하루 11만대의 통행을 예상했지만 5만대에 그쳐 올해에만 5백억원이 넘는 적자를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정부가 민간 컨소시엄과 예상 수요의 90%에 미달할 경우 적자를 보상해주기로 계약을 한 데 있다. 이대로라면 보상시한(2010년)까지 4천3백억원을 보상해야 한다.

철도.도로.공항 등을 운영하고 있는 공기업.공단 상당수가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 때문에 공공시설물도 과감하게 민간에 경영을 맡기고 이용료도 단계적으로 현실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공기업이 적자를 내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월드컵 경기장을 짓고 있는 10개 시도 이런 문제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윤철 전주시 월드컵 추진단장은 "현재 지방정부 형편으론 연간 25억원이나 되는 경기장 유지.관리비를 감당할 수 없다" 며 "인근에 9홀짜리 퍼블릭 골프장을 지어 경기장과 함께 민간에 경영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 이라고 털어놓았다.

◇ 따로 노는 시설=연간 4백만명 이상의 여객 처리능력을 갖춘 수도권 신공항으로 계획됐다가 인천신공항에 밀려 '중부권 거점 공항' 으로 격이 떨어진 청주국제공항. 그러나 말만 거점 공항이지 인천국제공항 건설이 시작되면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해왔다.

국토의 중간부분에 자리잡고 있다는 이점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국제 화물 물류의 허브공항으로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지만 청주공항엔 화물 청사가 없다. 심지어 청주공항과 중부고속도로를 연결하는 오창 인터체인지조차 개항한 지 1년 뒤인 1998년 12월에야 개통됐다.

충북개발연구원 원광희 박사는 "수도권 인근에만 국제선을 수용할 수 있는 공항이 인천.김포.청주 세 곳이나 되지만 이들의 역할을 어떻게 분담시킬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 며 "새 시설만 지을 게 아니라 기존 시설을 적절히 활용해 예산을 아끼는 지혜가 아쉽다" 고 강조했다.

◇ 공무원도 실명제 필요=건설교통부는 99년 '공공사업 효율화 대책' 을 내놓으면서 사후 평가를 활성화하기 위해 사업 단계별로 참여한 업체는 물론 관계 공무원까지 전원 실명을 밝히도록 사업실명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설계.시공.감리의 경우 지난해부터 책임기능공과 설계자까지 실명을 밝히도록 제도가 바뀌었으나 공무원은 열외다. 이 때문에 큰 사고가 나거나 부실 시공 논란이 일면 책임은 설계나 시공.감리를 한 민간기업이 다 뒤집어 쓰기 일쑤다.

환경정의 시민연대 서왕진 사무처장은 "초대형 국책사업을 제대로 사후 평가하기 위해선 사업 결정과 진행 과정에 참여한 공무원이 누구인지도 반드시 실명화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건교부 관계자는 "공무원은 업무 분담이 분명해 담당자가 누구였는지 금방 밝혀낼 수 있어 굳이 실명제 대상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었다" 고 해명했다.

◇ 사장되는 노하우=경부고속도로 이후 건설된 도로는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간 공사 현장에서 얻은 노하우나 실패.성공 사례를 담은 솔직한 보고서는 드물다. 이 때문에 똑같은 공사를 해도 비슷한 시행착오가 되풀이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헌동 대표는 "미국에서는 학교나 도로처럼 표준화할 수 있는 공사는 과거 시공 경험을 토대로 표준설계도를 만들어 활용한다" 며 "시공업체가 표준설계도와 시공법을 개선할 경우 절감한 사업비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주는 등 현장의 노하우를 최대한 살린다" 고 소개했다.

기획취재팀=민병관.전영기.이규연.최상연.정경민.신예리.김기찬.김현기.
이상복 기자 proje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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