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속 인물과 사건] 엽기적인 범죄, 무거운 처벌만이 답일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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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한 범죄 소식이 많이 들려오면서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가해자의 인권만 고려할 뿐, 피해자가 당한 고통은 생각하지 않느냐는 성토지요. 처벌을 강화하는 것 자체가 범죄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논리에는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모두가 “처벌 강화”를 외치는 요즘, 신문에 눈길을 끄는 판결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재판장이 울었다, 방청객도 울었다’ (중앙일보 2012년 9월 7일자 중앙일보 16면)라는 기사인데요. 어머니를 살해하고 그 시신을 8개월간 방치한 고교생에게 징역 3년6월이 선고됐다고 합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했다니… .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천륜에 반한 짐승같은 짓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해 보입니다. 이 사건이 처음 벌어졌을 때 여론도 범죄를 저지른 고교생을 매섭게 질책했습니다. 엽기적인 범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고요.

하지만 판사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범죄를 저지른 지모군은 2006년부터 어머니로부터 성적을 올리라는 이유로 가혹한 체벌에 시달렸다고 해요. 골프채로 200대를 맞아 피투성이가 된 적도 여러 차례였다고 하고요. 실상 학교 성적도 매우 우수한 축에 속하는 지군에게 ‘전국 1등을 하라’고 압박했던 거죠. 어머니의 질책과 매가 무서웠던 지군은 급기야 자신의 성적표를 위조했다고 합니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은, 지군의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가 있기 하루 전이었지요. 지군은 다음 날이면 자신의 거짓말이 발각될 거라는 불안감과 또다시 시작될 매질에 대한 공포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지군의 사연을 보고 많은 학부모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해요. “혹시 나는 …”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친 겁니다. 이들은 지군을 향해 손가락질 대신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고 말합니다. 지 군은 성적 지상주의, 1등 지상주의로 일그러진 우리 사회가 만든 피해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거죠.

 마지막 판결을 맡은 판사 역시 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지군에게 징역을 선고하며 눈물을 떨구었다고 해요. “피고인을 지금 당장 아버지 품으로 돌려보내지는 못하지만 어미의 심정으로 피고인의 장래를 위해 기도할 것을 약속한다”며 재판을 마무리지었답니다.

범죄자들은 종종 “나도 피해자”라는 말을 합니다. 그가 처한 환경과 상황을 따지고 들어가보면 사실 틀린 주장만은 아닐 때도 많지요. 부모님의 이혼과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환경이 범죄를 키웠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가해자의 사정을 이해해주면 피해자의 억울함은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법의 적용이 어려운 일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범죄는 범죄일 뿐이니 살인죄, 그것도 존속살인죄에 해당하는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지군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가 좀 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한 판결이 옳을까요. 그리고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고민해볼 일입니다.

김지연 중앙일보 NIE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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