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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리빙] 햇살·비·꽃과의 동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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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밖에서 본 모습

▶ 안마당

▶ 안마당에서 본 야경

▶ 안방에서 본 풍경

내 집을 지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생각을 접고 아파트에 길들여지고 만다. 학군 탓에, 재테크를 고려해, 생활의 편리 때문에…. 그렇다면 도시생활에서 '집=아파트'는 깨지지 않는 등식일까. 20여 년을 살아온 아파트를 '탈출'한 건축가 안명제씨가 그 대안을 제시해 왔다.

내가 설계한 집에 살아보고 싶다는 오랜 꿈을 작년에야 비로소 실현했다. 오랫동안 살아온 아파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고 과밀해져 주거환경은 점점 더 나빠지는 지경이었다. 아파트 내부도 단조롭고 닫혀 있어 일상적으로 머무르기에는 너무 갑갑했다.

일반적으로 단독주택은 살기 불편하고 관리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학군이니, 재테크니 하는 시달림에서 벗어나 진정한 거주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집을 꿈꾸어 보기로 했다. 단독주택에서 살기로 작정한 우리 부부는 살기 적당한 동네를 찾아다녔다. 처음엔 근교의 전원주택지를 찾아보았지만 출퇴근 거리가 멀고 길에 낭비하는 시간이 아까워 일찌감치 포기했다. 다음으로 신도시의 단독주택지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일시에 지어진 집들로 채워진 동네라 사람 사는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다. 사무실 부근의 동네도 관심을 가져 보았지만 다세대 주택들로 빽빽이 채워져 삭막한 동네로 변해버렸다. 결국 강북 도심에 있는 주택지에 눈을 돌렸다. 오랫동안 주거지로 형성돼 왔고 별로 개발되지 않은 곳,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구불구불한 길이나 세월의 때가 곳곳에 묻어 있는 곳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오랜 방황 끝에 서울 성북동 골짜기를 만나게 되었다. 멀리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짙은 녹음과 숲 속에 파묻혀 있는 집들, 도심 가까운 동네면서도 흔한 아파트 하나 안 보이는 느슨한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연경관지구로 건폐률 30%, 3층 이하 등 건축규제가 심한 동네였다. 그래서 그동안 개발이 잘 안 돼 결과적으로 땅값도 주변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이런 여러 조건들은 주택에 살아 보려는 우리의 생각과 맞아떨어졌다. 왜 강남의 말끔한 아파트를 두고 이런 곳에 들어와 흐뭇해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우리 동네는 초입의 구멍가게에서부터 시작된다. 막다른 도로 입구에 있는 이 가게는 밤늦도록 부부가 번갈아 자리를 지키기 때문에 동네에 들어서는 낯선 사람을 구별해 낸다. 그들은 아파트 경비원이나 여러 방범설비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든든한 동네 지킴이다.

동네 입구에서 언덕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4m쯤 높은 축대 위에 마당이 있다.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바깥마당은 도로에서 마당이 보이도록 개방돼 있다. 현관을 들어서면 보이는 반대쪽 안마당은 조금 독립적이고 내향적이다.

1층은 안마당을 주위로 한옥의 홑집처럼 방이 늘어지도록 설계했다. 보통 아파트가 복도를 가운데로 좌우에 방이 이어지는 겹집이라면 이 집은 각 방들이 외부와 직접 면하는 홑집이다. 따라서 하루 종일 햇볕과 달빛에 노출되고 창을 열면 바람결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1층의 중심공간은 식당이다. 식당과 부엌은 각자 생활시간이 다른 가족이 서로 가장 많이 얼굴을 마주하는 공간이다. 식당 상부는 2층까지 뚫려 있어 1층과 2층을 하나의 공간으로 엮어준다. 한실로 꾸민 손님방은 손님이 왔을 때 차를 마시거나 머물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가족을 위한 공간인 거실은 2층에 독립적인 공간으로 마련했다. 건폐율 한도 내에서 방을 배치하다 보니 안방이 3층으로 올라가게 됐다. 3층을 다 쓰는 우리 부부의 처소는 별채 혹은 옥탑방처럼 아주 조망이 좋은 독립적인 공간이 됐다.

마당은 철철이 변하며 살아 있는 느낌을 주도록 했다. 안마당 한구석에는 오래 전부터 자리를 지키던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산수유, 여름날 서너달 붉게 피는 배롱나무, 가을에 풍성한 감나무, 고요한 겨울 밤 창에 그림자를 비추는 대나무…. 모두 우리 집 마당에 초대된 나무들이다. 지난 겨울부터 이 집에서 살면서 도심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자연 속에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하루하루 변하는 날씨에도 자연스럽게 민감해졌다. 화창한 날 집안 가득 들어오는 햇살, 비가 오면 마당에 비 닿는 소리,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를 온몸으로 느낀다.

아파트는 철문 하나를 경계로 안과 밖이 확연히 변하는 단절감이나, 집안에 갇혀 있다는 폐쇄감을 느끼기 쉽다. 이와 달리 주택은 아침에 일하러 집을 나서 저녁에 안식처로 돌아온다는 느낌과 일상의 여유를 갖게 한다.

안명제(전인건축사 사무소 대표)

***내 집을 짓겠다면

. 사전준비, 설계, 공사 기간을 여유있게 잡는다

. 하자보수를 위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

. 주거안전을 위해 이웃이 사촌이 되는 구조가 좋다

. 건설사를 정할 땐 집을 지어본 사람의 추천을 받는다

. 공사비를 꼼꼼하게 계산해 제시한 건설사를 택한다

. 예산 범위에서 가능하도록 설계자와 충분히 협의한다

. 집의 향을 잘 고려하고 단열시공을 철저히 한다

. 현란한 재료나 과다한 장식보다 여백의 미를 살린다

. 주변 경관에서 가릴 건 가리고 좋은 경치는 잘 보이게 한다

. 주택에서 사는 맛은 마당에 있으므로 조경에 신경 쓴다

. 내부 복도나 계단을 산책로나 갤러리가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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