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독일, 남유럽 돕든지 아니면 유로존 떠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조지 소로스

‘독일은 유럽 재정위기와 관련해 잘못이 없다. 단지 독일 국민이 유로 체제를 지키기 위해 게으르고 염치없는 남유럽 사람들을 돕는 데 엄청난 돈을 쓰고 있을 뿐이다.’ 유럽 경제위기에 대한 통념이다. 스페인이나 그리스 경제 전문가들이 독일의 지나친 재정긴축 요구나 이기적인 무역흑자를 지적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패자의 변명’처럼 무시됐다.

 그런데 ‘헤지펀드의 귀재’ 조지 소로스(82)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독일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독일이 남유럽 경제성장을 돕든지 아니면 스스로 유로존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놀랄 만한 발언이다. 독일이 이탈해도 유로존이 유지될 수 있다는 얘기인가.

 소로스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는 한 술 더 떠 “독일이 떠나면 프랑스가 주도하는‘라틴 유로’가 생길 것”이라며 “(독일 이탈로) 라틴 유로의 가치가 떨어지면 남은 회원국들은 수출과 부채 상환에 훨씬 유리한 상황을 맞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이 유로존에 버티고 있는 바람에 외환시장에서 유로 값이 높게 형성돼 다른 회원국들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얘기다.

 소로스는 “독일이 유로존을 떠나지 않으려면 리더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분데스방크가 중심이 돼 유럽중앙은행(ECB) 국채 매입 등에 대해 이념적으로 반대하고 물가를 연 2% 이내에서 억제해야 한다는 교리에 집착하고 있는데,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유로존이 연 5%의 명목 성장을 목표로 삼아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는 정책을 펴야 상생할 수 있다”고 했다.

 소로스는 1980년대 남미 외채위기 경험을 빌려 독일이 주도하는 긴축을 비판한다. “82년 남미 외채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고강도 긴축을 요구했다. 그 결과 남미는 10년 동안 경기침체에 빠졌다.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지금 독일이 그때 IMF가 했던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재정긴축 때문에 유럽은 앞으로 5~10년 동안 불황에 시달릴 것이다.”

 그렇다고 독일이 긴축정책의 덕을 볼 수 있을까. 소로스는 “긴축처방이 세계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독일 성장률도 낮아지고 결국엔 성장엔진이 멈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중국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중국 경제는 하드랜딩(경착륙)할 운명”이라며 “이 또한 세계경제의 불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실 독일도 과도한 긴축요구 때문에 애먹은 적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다. 당시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에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영국·프랑스 사람들은 “독일인들이 전쟁을 일으킨 주제에 방만하게 살며 마르크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바이마르공화국 시절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배상금 부담을 줄이고 있다”며 “허리띠를 졸라매 빚을 갚아야 한다”고 강하게 압박했다. 이는 요즘 독일인들이 그리스인 등에게 하는 말과 비슷하다.

 1920년대 독일도 “배상금과 긴축이 너무 부담스러워 경제가 파탄 날 지경”이라며 “배상금 상환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간청했다. 최근 안도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가 재정개혁 기한 연장을 요구한 것과 빼닮은 얘기다.

 소로스는 “지금 독일이 그리스를 몰아붙이고 있지만 결국엔 도와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년대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배상금 지급 기한을 연장해줬듯이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