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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만원짜리 양복·악어백 … 명품으로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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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스웨터 하청 공장으로 시작해 이탈리아 명품 핸드백 회사를 인수한 신원의 박성철 회장. 그는 “1970년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눈은 해외를 향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신원은 1990년대부터 갭·제이크루와 같은 미국 브랜드 제품을 생산해 납품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박종근 기자]

3000만원짜리 악어백을 만들어 파는 회사. 직물 편직기 7대, 직원 13명으로 1973년 출발한 패션업체 신원의 현재 모습이다. 신원은 지난 7월 이탈리아의 ‘로메오 산타마리아’를 인수했다. 악어·타조 가죽으로 명품백을 만드는 65년 된 브랜드다. 신원은 이 회사 제품을 한국과 유럽뿐 아니라 중국에도 판매할 예정이다. 2017년까지 150개국으로 판로를 넓힌다는 목표다.

 39년 전 회사를 세운 박성철(72) 회장은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눈은 해외에 두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잠시 정치권에 몸을 담기도 했다. 의류 사업을 시작한 건 서른셋 때였다. 박 회장은 “기자 시절 섬유·의류 분야를 취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의류를 하청 받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웨터를 만들어 국내 무역회사들에 납품한 것이 사업의 출발. ‘직접 수출해 보자’는 생각으로 미국 바이어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바이어가 한국에 오면 제품 사진만 보고도 하루 만에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보여주는 식으로 외국 수준을 따라잡으려 애썼다”고 했다.

 미국 업체들의 신임을 얻고 거래를 넓혀갔다. 박 회장은 “1988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이 600억 달러이던 때 스웨터 하나로 1억 달러 수출을 했을 정도”라며 “처음엔 작은 업체들과 거래하다 90년대 중반엔 월마트·갭 같은 회사의 납품을 땄다”고 말했다.

 수출만 하던 신원은 1990년 ‘베스띠벨리’로 국내 브랜드를 시작했다. 의류 부분이 성장하면서 다른 쪽까지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신용카드·통신까지 진출해 97년 16개 계열사, 매출 2조원을 기록했다. 재계 순위 29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해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빚더미에 앉았다. 계열사 전체에서 7000억원 수준이던 부채가 1년 만에 2조원으로 늘어났다. 외화 빚을 끌어다 썼는데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건설회사 보증채무를 갚지 못해 빚은 더 커졌다. 결국 이듬해 5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됐다.

 박 회장은 “고민 끝에 확장했던 사업을 모두 정리했다”고 말했다. 건설·전자·전기 회사와 골프장을 매각하고 본업인 패션만 남겼다. 5년 만에 빚을 800억원대로 줄이고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외환위기 전 15개였던 의류 브랜드는 11개로 줄였다. 사업도 브랜드도 모두 핵심만 남기고 정리한 셈이 됐다. 그는 “처음 시작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던 듯하다”며 “그래도 외부 자금조달 없이 빚을 정리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한때 3000억원대로 줄었던 매출은 지난해 약 5300억원이 됐다. 이제 박 회장의 전략은 ‘명품 브랜드 확보’다. 3년 전에 이탈리아의 최고급 남성복인 ‘브리오니’의 수입·판매를 맡았다. 양복 한 벌에 3000만원 선인 브랜드다. 지난해엔 한 벌 40만~70만원인 미국 청바지 ‘씨위(Siwy)’도 들여왔다.

 국내 의류업체들과 명품 포럼도 올해 초 만들어 이끌고 있다. 패션·섬유·전자·생활용품 업체 100곳이 참여한다. 명품 브랜드의 사례 연구를 하고, 명품화 전략을 함께 토론하는 모임이다. 세계 점유율 3위 안에 들면 ‘졸업’하고 새 회원사를 받는다.

 그는 “한국 기업도 세계 일류 회사를 인수하는 식으로 명품 시장을 잡을 수 있다”며 의욕을 보였다. “전남 신안의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에서 자랐다”는 그가 세계적 ‘명품왕’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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