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농심 울린 태풍은 경종 울리려는 것…햇빛과 비바람 조화 위해 환경보호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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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용 농업환경연구가

자연으로 돌아가라. 햇빛과 바람 그리고 비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가장 큰 축복이다. 그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 볼라벤이 나타난 것은 아닌지….

처음엔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냥 잘 넘어가려니 생각했다. 역대 5번째 위력을 보인 태풍 볼라벤은 모든 이의 가슴을 졸이게 하더니 결국 자연을 의지하고 사는 농심(農心)까지 삼켜버렸다. 인정사정없는 태풍은 성난 괴물처럼 모든 것을 걷어치웠다. 제발 우리 집 지붕만은 남겨주세요. 태풍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았다. 간판도 가로수도 다 팽개쳐 버렸다.

일러스트=박향미

지난 5, 6월에는 햇빛이 104년만의 가뭄을 가져다 줘 논밭을 묵이게 하고 농작물과 야생초까지 시들어 죽게 했다. 이번에는 비바람이 지상의 모든 것을 다 쓸어버려 주변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감나무 잎이 강풍에 못 이겨 찢겨 날리고 앙상한 가지로 변하고 바닥엔 익지 않은 땡감이 나뒹굴었고 배나무 밭에도 사과 밭에도 숱한 과일들이 떨어졌다. 눈보라처럼 휘날린 나뭇잎은 농부의 마음을 때렸다.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호박 넝쿨까지 내버려두지 않았다. 넝쿨은 자리를 옮겼지만 나뒹구는 신세가 되어 더 이상 호박을 맺을 수 없게 됐다. 콩 포기는 견디다 못해 쓰러져 더 이상 일어날 수가 없다. 농부는 말을 잃었다.

그러나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연이 주는 혜택에 감사할 뿐이다. 농심은 천심이기 때문이다. 농심은 말한다. 생명의 원천은 식량이다. 식량은 하늘과 자연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선물인데 과학문명에만 의존하려는 현 세대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렇게 혹독한 재난을 인간 곁에 안긴 것은 아닌지….

필자는 비바람과 햇빛이 조화를 이룰 때 농심을 위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온난화 현상을 유발하는 이 모든 것이 후손에게 더 큰 재앙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기원한다.

이광용 농업환경연구가
일러스트=박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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