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4패’ 한 번 더 싸운 이세돌·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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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른쪽 위 부분이 4패가 생긴 곳.

‘죽음의 조’ F조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첫날(4일) 이세돌은 녜웨이핑을 꺾고 구리는 장쉬를 꺾었다. 말이 죽음의 조일 뿐 F조는 이세돌과 구리를 위한 잔치판이기도 했다. 한데 둘째 날(5일) 이세돌 대 구리의 대결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치열한 전투 끝에 세계대회 본선 사상 처음으로 ‘4패’가 등장한 것이다. ‘3패’나 ‘4패’는 쌍방이 번갈아 패를 따내기 때문에 끝없이 순환할 뿐 바둑이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4패는 판 빅, 즉 무승부가 될 수밖에 없다.

 기보의 우측을 보면 네 개의 패가 있다. 쌍방 사활이 걸려 있고 패를 따내지 않으면 단수로 몰리기 때문에 숨 쉴 틈 없이 패를 따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바둑은 무승부가 됐고 잠시의 휴식 끝에 오후 4시45분 재대국이 시작됐다(삼성화재배는 점심시간이 없다. 이세돌은 컵라면으로 때우고 재대국에 들어갔다. 제한시간은 본래 각 2시간이지만 재대국의 경우는 1시간으로 줄어든다. 대국은 오후 9시가 다 돼 끝났다).

 재대국도 이세돌의 거듭된 강수로 인해 사투의 연속이었다. 승부가 끝없이 뒤집히고 또 뒤집히더니 막판 이세돌의 끝내기 실수로 구리의 불계승. 쌍방 체력을 있는 대로 쏟아부은 진저리 나는 명승부였다. 구리는 이 승리로 16강 진출이 확정됐으나 패자인 이세돌은 이튿날 장쉬와 또 한번의 격전을 치러야 했다. 이세돌은 영영 잊지 못할 힘겨운 체력전 끝에 간신히 장쉬를 꺾고 16강에 올랐다.

 3패나 4패는 2년에 한 번 나타날 정도로 희귀하다. 일본에선 3패를 불길한 것으로 친다. 전국시대 패자 오다 노부나가가 암살당하던 날, 본인방 산샤의 대국을 관전했는데 그 바둑에서 3패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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