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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골드 타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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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게티이미지]

‘황금(Gold)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 금값 오르는 속도가 최근 가팔라지면서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2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온스(31.1g)당 1694달러를 기록했다. 전날에는 1696달러였다. 1700달러 선에 바짝 다가섰다. 지난 3월 이래 최고치다.

 2000년 온스당 200달러 선에 불과하던 금값은 꾸준히 올랐다. 지난해 8월 유럽 재정위기가 부각됐을 땐 온스당 1600달러 선이던 금값이 한 달도 안 돼 1900달러까지 치솟았다. 사상 최고를 기록한 금값은 ‘금이 최고의 안전자산’이라는 패러다임을 확실히 다졌다. 금이 기세를 떨칠 때면 현금(cash)은 맥을 못쓰기 일쑤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초반, 독일에서 일어난 사상 최악의 하이퍼(초) 인플레이션이 역사적 증거다. 빵 한 조각을 사려고 돈다발을 수레에 싣고 가야 했다.

 ‘금=안전’ 패러다임은 그러나 지난해 가을 깨졌다. 금값은 지난해 11월부터 하락했다. 연초 반등하는가 싶었지만 3월부터 다시 떨어졌다. 5월 중순엔 1500달러 선까지 위협했다. 길게 보면 2000년 이후 10년 넘게 이어진 금값 상승세(골드 랠리)가 꺾이자 패러다임 신봉자 측은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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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틈을 타 반대 측은 반격에 나섰다. “최고의 자산은 우량주식”이라는 신념을 가진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대표적이다. 2월 말 공개된 주주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에서 ‘금의 쓸모없음’을 일갈했다. 그는 “금은 100년이 지나도 크기가 변하지 않을뿐더러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고 애지중지해 봐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값 하락 추세가 절정에 달했던 6월 말엔 미국의 투자컨설팅 회사인 차트프로펫캐피털의 요니 제이컵스 선임 투자전략가가 경제전문방송 CNBC에 출연해 “선진국의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지면서 금값이 온스당 700달러대까지 추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4월엔 『골드 버블(Gold Bubble)』이라는 금값 붕괴를 예측하는 책을 펴냈다.

 골드랠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0~80년대 초가 첫 번째다. 71년 닉슨 미 대통령이 금본위제도를 포기하면서 달러와 금이 결별했다. 금값은 자유를 찾았다. 이 기간 오일 쇼크로 물가가 급격히 오르자 ‘인플레이션 피난처’로 금의 인기가 치솟았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고조된 전쟁 위험은 상승세를 부채질했다. 80년 1월엔 금값이 온스당 900달러 선에 근접했다. 10년 동안 15배 넘게 올랐다. 그러나 이후 금값은 곤두박질쳤고 장기간 침체를 이어갔다.

 금값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를 2차 골드랠리로 부른다. 2000년 기술주 버블 붕괴로 증시가 침체되면서 대안투자로 금이 떠올랐다.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도 금값을 밀어올렸다. 국방비가 늘면서 미국 재정 상태가 적자전환했다. 빚이 늘어나니 달러 가치는 떨어졌고, 달러 약세를 대신해 금이 주목을 받았다.

 중국·인도 등의 경제 발전에 따른 소득 증가로 금 수요도 늘었다. 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개발되면서 투자 목적의 금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금 ETF가 보유한 규모는 2000t을 웃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금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다.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지난해 금 수요는 4574t이었지만 공급은 4497t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세계 경기 침체는 금 수요마저 줄게 했다. 줄어든 금 수요는 가격을 끌어내렸다. WGC가 공개한 2분기 금 보고서를 보면 세계 금 수요는 99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줄었다. 전 세계 금 수요의 절반가량(45%)을 차지하는 인도와 중국의 수요가 부진했던 탓이다. 여기에 투자 목적의 금 수요도 23% 줄었다.

 게다가 가격이 한계에 이를 정도로 너무 많이 올랐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해도 지금의 금값은 81년 사상 최고치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 아커스인베스트먼트의 피터 태스커 대표 펀드매니저는 지난달 초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칼럼에서 “금값 동향을 전하는 웹사이트 ‘pricedingold.com’에 따르면 현재의 금값은 미국 주택가격과 비교했을 때 120년래 최고치이고, 미국 임금과 비교하면 74년래 최고치”라고 분석했다.

 경제 상황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급변하고, 가격도 사상 최고에 가까운 금은 더 이상 투자자에겐 안전자산이 아닐 수 있다. 가격이 떨어질까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HSBC의 제임스 스틸 애널리스트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투자자가 더 이상 금을 안전자산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패러다임 시프트(구조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인플레이션에 대비할 수 있는 최선의 자산은 금이라는 믿음 투자자 사이에선 공고하다. 그래서 최근 몇 달 새 금값은 미국의 추가 양적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움직였다. 시장에 달러가 추가로 풀리면 달러 약세와 인플레를 우려한 투자자가 금 매수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귀금속 컨설팅업체 톰슨로이터GFMS의 필립 클라프위지크 금속 분석 담당 대표는 FT에 “금 가격이 내년 상반기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며 20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은 수요도 곧 회복될 것으로 본다. 각국 중앙은행이 외화 보유액 구성을 다변화하기 위해 금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금을 1000t 넘게 보유하고 있지만 전체 외환보유액 중 금의 비중이 1.6%에 그친다. 또 최근에는 러시아가 금 매입에 적극적이다. 5년간 가장 금을 많이 사들인 곳이 러시아 중앙은행이다.

 일부 ‘투자의 대가’는 이미 움직였다. 조지 소로스의 소로스펀드는 세계 최대의 금 EFT인 ‘SPDR골드트러스트’의 지분을 1분기 32만 주에서 2분기엔 88만 주로 늘렸다. 존 폴슨의 ‘폴슨앤컴퍼니’도 이 ETF를 2분기 26% 더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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