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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과, 볼라벤 비바람도 버텨냈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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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올해로 5년째 유기농법으로 사과 농사를 짓는 김동진씨는 “유기농 사과나무는 일반에 비해 자연재해에 좀 더 강하다”고 말했다. [사진 영주시]

8월 말 태풍 볼라벤과 덴빈은 경북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 소백산 기슭을 비켜갔다.

 이곳에서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사과 농사를 짓는 김동진(70·영주시 풍기읍)씨는 “태풍 덴빈으로 사과나무 10그루가 쓰러지고 사과는 많이 떨어진 게 한 나무에서 10개쯤 떨어져 피해랄 게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영주에서 유일하게 과수원 2㏊에서 유기농 사과를 생산한다. 유기농산물은 저농약과 무농약 인증을 받은 뒤 전환 기간 3년을 거쳐 비로소 주어지는 인증이다. 그가 실천하는 유기농법은 자연 재해에도 상대적으로 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에 3년 전 소개된 일본 아오모리현 기무라 아키노리의 ‘기적의 사과’는 좋은 예다. 1991년 아오모리에 대형 태풍이 상륙했을 때 주변 과수원의 사과는 90% 땅에 떨어졌으나 기무라의 사과는 80%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고 한다. 자연농법으로 사과나무 스스로 오랜 기간 면역력을 높여 외부 환경에 강해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재해 때문에 친환경 농사를 시작한 케이스다. 그는 15년 전 극심한 우박 피해를 봤다. 김씨는 그해 사과를 수확하지 못하고 외상 농자재 값을 감당하지 못하자 농약과 비료를 사들일 수 없어 친환경농법을 시작했다. 소백산이면 농약 없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확신하던 터였다. 20대 초반 보급된 파라티온을 살포하다가 중독돼 사흘 만에 깨어난 그는 친환경농업이 일반화되기 이전에도 6회 이상 농약을 살포하지 않았다. 특히 제초제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후 저농약·무농약을 거치며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김씨는 2008년 마침내 국내 사과 분야 최초로 유기농산물 인증(한국농식품인증원 제1-1-206호)을 받았다.

 유기농 사과 농사는 시도 자체가 쉽지 않다. 농민들은 대부분 과수가 농약 치지 않고 농사 짓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김씨는 “사과가 유기농 과일 중에서도 어려운 작목”이라며 “사과에 당분이 있어 벌레가 끝없이 달려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전국을 다 쳐도 사과 유기농은 50농가에 불과할 정도다.

 김씨의 유기 농장에 들어서면 사과나무의 잎 색깔부터 다르다. 석회 유황합제와 천연재료만 사용해 잎은 회백색을 띠고 땅에는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온갖 미생물이 있다.

 김씨는 연간 사과 30여t을 생산하는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사과가 더 많이 열렸다. 맛도 다르다. 수확철이 되면 전국의 유명 유통점 바이어들이 찾고 이마트와 풀무원 등에 납품한다. 값도 일반 사과의 두 배쯤 받는다.

 그는 “내 가족과 국민이 먹는데… 농약 치면 온전한 식품이 아니다”며 “유기 농법을 실천하려는 농업인이 있다면 노하우를 모두 전수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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