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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전 총장 얼굴마담 세우고 이자 20% 약속한 공제회 교수 4000여 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최근 수도권의 한 대학이 교수와 교직원들에게 긴급 안내문을 배포했다. 높은 이자를 준다고 선전하는 사설 공제회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으나 이 가운데 신뢰도가 검증되지 않은 단체도 있으니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문이었다.

 검찰 수사 결과 전국의 교수 4000명이 맡긴 돈 500억원을 공제회 임원 한 사람이 횡령한 것으로 드러난 ‘전국교수공제회’도 이 같은 사설 공제회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단체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지 않은 미인가 공제단체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이 ‘공제회’란 이름만 믿고 의심 없이 돈을 불입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피해액수는 더욱 늘어날 조짐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제회에는 교수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고, 인터넷 홈페이지는 접속이 폭주해 다운됐다. 부동산 투자 등으로 이미 손실을 본 돈을 되찾기도 힘들다. 대학가에선 “터질 일이 터졌다”는 분위기다.

 2일 수원지방검찰청에 따르면 사업가 출신인 이모(60·구속)씨는 1998년 전국교수공제회를 만들었다. 71년 법률에 의해 설립된 한국교직원공제회를 모방한 단체였다. 이씨는 수도권 한 대학의 전직 총장을 회장으로 내세운 뒤 교수 생활 안정과 복리 증진을 명분으로 전임강사 이상의 교수와 배우자 등을 회원으로 모집했다.

 공제회는 e-메일 등을 통해 “보유자산이 4조원에 이른다. 10년째 흑자를 내고 있는, 교수들의 복리·후생을 전담하는 기관”이라고 홍보했다. 또 장기저축 형태로 매달 15만4000원에서 46만2000원을 불입하면 정년퇴직 시 원금에 20% 이상 이자를 붙여 환급하겠다고 알렸다. 5000만~1억5000만원의 정기예금을 1~3년간 납입하면 시중은행보다 2배가량 높은 이자를 지급하겠다고도 했다.

 이런 사실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지난 12년 동안 전국의 전·현직 교수 4000여 명이 3000억원이 넘는 돈을 예치했다. 한 대학교수는 “회장부터 이사까지 모두 전직 대학교수와 총장으로 꾸려져 있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렇게 투자받은 돈을 부동산사업이나 펀드에 투자했다. 또 아내와 아들·처남 등 가족 7명을 회사 운영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일부는 수도권 등 네 곳에 236억원 정도의 땅을 구입했다. 이씨는 “공제회를 위해 투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횡령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가 실질적 운영자라 공제회의 다른 이사나 직원들은 횡령 사실을 잘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전체 직원(60명)의 10%가 이씨의 가족과 친지로 채워진 만큼 이들이 범행에 가담했는지 여부도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해금액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공제회가 모금한 액수는 모두 3000억원에 달하지만 현재 보유금액은 1000여억원 정도다. 이씨가 횡령한 500여억원을 제외하고도 1500여억원이 부족하다. 검찰은 부족한 1500여억원도 이씨가 부동산사업 등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냈거나 추가로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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