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실 판정은 신중하게, 퇴출은 신속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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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내년 1년 동안 정부 재정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대학 43곳의 명단이 엊그제 발표되면서 대학 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이번 발표로 하루아침에 부실이란 이미지를 덮어쓰게 된 대학들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앞에 닥친 수시모집에서 타격을 입을 판국이다. 그러니 이들 대학이 정부의 선정 평가 방식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매년 전국 4년제와 전문대 등 300여 개 대학 가운데 상대평가 방식으로 평가 점수가 낮은 하위 15%가 선정되는 평가 방식이 대학들에는 ‘폭탄 돌리기’라는 불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선정 방식에서 취업률이나 재학생 충원율 등 일부 지표의 점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향후 개선될 필요가 있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허위로 실적을 부풀린 대학도 올해 여럿 적발됐다고 한다. 특정 지표 비중이 크다 보니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대학이 취업에만 매달리다 보면 대학의 주요 기능인 교육과 연구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하니 이런 지적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또한 대학의 부실을 막기 위해서는 법인의 역할이 중요하나 법인 관련 평가 지표 비중이 낮다는 점, 수도권과 지방으로 대학을 나눠 상대평가에 의해 하위 대학을 걸러내는 방식도 재검토해야 한다.

 지난해 재정지원 제한 대학 명단에 오른 상명대·원광대·경남대 등은 지난 1년간 내부 개혁에 나서 올해엔 부실이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원광대 등은 학생 정원을 대폭 줄이고 경쟁력 없는 학과를 폐쇄하는 등 남다른 자구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 제도가 잘 활용되면 대학들로 하여금 스스로 구조조정을 가속화해 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이에 비해 2년 연속 신입생에 대한 학자금 대출이 중단되는 대학도 4곳이나 된다. 이런 대학은 제거돼야 할 폭탄에 가깝다. 정부의 부실 판정은 신중하게 하되, 부실 정도가 심해진 대학에 대해서는 신속히 퇴출을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