颱風<태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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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호 27면

당(唐)나라 시인 이교(李僑)는 바람(風)을 이렇게 노래했다. ‘깊은 가을 낙엽을 흘려 떨어지게 하고(解落三秋葉), 초봄 꽃을 피게 한다(能開二月花). 강을 지나며 천 척의 파도를 일으키고(過江千尺浪), 대숲에 들어 대나무들을 눕게 한다(入竹萬竿斜)’. 여러 폭의 동양화를 이은 병풍을 보고 있는 듯하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한자 ‘風’은 ‘凡(무릇범)’과 ‘蟲(벌레충)’이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다. 고대 자전인'설문(說文)'은 ‘風’을 설명하며 ‘바람은 벌레들을 깨어나게 한다(風動蟲生)’고 표현했다. ‘바람이 8일 동안 불어야 벌레가 깨어난다(蟲八日而化)’고도 했다.

바람은 그러나 이렇게 순(順)하지만은 않다. 비를 동반하며 휘몰아치는 바람이 있으니 그게 바로 ‘태풍(颱風)’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台風’으로 표현한다. ‘颱’나 ‘台’ 모두 ‘북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해 아시아 동부로 불어오는 거대한 바람’을 뜻한다. 태풍의 어원인 ‘颱’라는 글자가 중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1634년에 편집된 복건통지(福建通志) 제56권 ‘토풍지(土風志)’에서다. 그 전 중국에서는 우리가 지금 말하는 태풍을 ‘<98B6>(구)’라고 표현했다. ‘사방의 바람을 몰아 불어온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98B6>’는 지금도 ‘허리케인’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언어학자에게 ‘태풍’과 ‘Typhoon’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일부 학자는 ‘중국인들이 태풍을 큰 바람, 즉 대풍(大風)이라고 했고, 이 말의 광둥식 발음인 ‘Toi Fung’이 서양으로 건너가 ‘Typhoon’으로 표기됐다고 말한다. 반면에 영어가 먼저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스신화 속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지하 암흑세계의 신 타르타로스 사이에 태어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티폰(Typhon)’이 중세 아랍인을 통해 동아시아에 전해져 ‘颱風’으로 표기됐다는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 민간에서는 ‘대만(台灣)’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해서 ‘台風’이라고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태풍의 생성과 진로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듯, 그 어원도 미스터리인 셈이다.
지난주에만 두 차례에 걸쳐 태풍이 불어와 전국을 강타했다. 태풍이 자연현상이라면, 피해를 복구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그리고 곧 불어올 서늘한 바람을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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