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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벤' 강타 제주 주민 "매미보다 더 큰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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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자 기상청 관계자들이 지구환경 3차원 가시화시스템을 통해 태풍의 이동을 지켜보고 있다. [안성식 기자]

27일 오후 10시. 태풍 볼라벤이 몰고온 강풍으로 제주도내 5000여 가구가 정전됐다. 주민들은 귓전을 때리는 바람과 세찬 비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날 서귀포항엔 3층 건물 높이의 방파제 위로 거대한 파도가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덮쳤다. 서귀포항의 명물 새연교에도 파도가 삼킬 듯이 몰아쳤다. 성인도 밖에서 걸으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기자가 차문을 열고 닫는 데 힘이 들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제주도는 이날 오후 3시를 기해 제주도와 남해 먼바다의 태풍주의보를 태풍경보로 높였다.

 이날 오후 4시57분에는 제주시 노형동 모 교회의 십자가 구조물이 강풍에 넘어지며 근처 전봇대를 덮쳤다. 이 바람에 인근 지역 520가구에 정전이 발생했다.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삼거리 신호등이 파손됐고 가로수가 쓰러지는 등 태풍에 의한 시설물 피해가 늘었다. 밤새 태풍이 강해지면서 정전된 가구는 5000곳을 넘었다. 오후 9시 이후엔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 서귀포 주민 50여 가구는 집에 물이 들어차 대피했다.

 기상청은 27~28일 새벽 사이 제주도 서해 해상에 최대 높이 12m의 파랑이 일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28일 오전 8시쯤 서귀포시 모슬포 해안 지역엔 5m 높이의 폭풍해일이 닥칠 것으로 예상했다. 빗발도 갈수록 굵어졌다. 제주도내 예상 강수량은 밤새 150~300㎜, 산간 지역에는 최고 500㎜ 이상 비를 뿌릴 것으로 보여 침수 피해도 우려됐다.

 서귀포항 건물 처마 밑에는 배를 걱정하는 선장·기관장들이 삼삼오오 모여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초조한 눈으로 기다렸다. 갈치어선 기관장인 윤상선(40)씨는 “태풍 매미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이번엔 비가 많이 와 그때보다 피해가 클 것 같다”고 걱정했다.

 13년간 서귀포항 관리를 해온 김용원(60) 항만청 주무관도 “이 정도면 매미보다 더 큰 놈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태풍 매미가 닥쳤을 당시 지금처럼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그래도 주민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바지선(밑바닥이 편평한 화물 운반선) 안에서 배를 지키려던 주민이 줄이 끊어진 것을 바로잡으려다 다리를 잘려 숨졌다.

 산방선 부근 도로는 낙석 사고를 우려해, 섭지코지 주변 도로는 해일 위험으로 통제됐다.

 서귀포시 멀동남오름 중턱에 있는 국가태풍센터 직원들도 26일 오후부터 비상근무 체제로 돌입했다. 기상청 소속으로 2000년 세워진 국가태풍센터는 태풍 진로를 예보하고 특성을 기록한다. 이날 센터 상황실에는 22개 모니터 앞에서 직원 6명과 해경 1명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제주도 시내에서는 이날 고층아파트나 빌딩 유리창에 젖은 신문이 붙여진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일명 ‘태풍 신문지’로 불리는 젖은 신문은 초속 40m 강풍 실험에서 테이프를 엑스자로 붙이는 방법보다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제주기점 항공기와 여객선 운항이 모두 결항되면서 제주도는 태풍 속에서 고립됐다. 한라산국립공원 입산과 도내 해수욕장 입욕도 전면 통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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