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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민주·민중 … 한국사 다음 화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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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87년 7월 서울 시청광장에 모인 이한열 열사 추모 인파. 그해 9월 창간된 ‘역사비평’이 지난 25년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묻는 특집을 마련했다. [중앙포토]

역사학계가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하다. 역사연구의 방향에 관한 성찰이다. 지난 30여 년 역사학계가 잡아든 키워드는 민족·민주·민중이었다.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6·25전쟁, 산업화 등에 대한 평가를 이 세 개의 키워드가 관통했는데, 이제 그와는 다른 흐름이 감지된다.

 진보성향의 역사학 계간지 ‘역사비평’ 100호 특집이 그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역사비평’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점에서 탄생했다. 1987년 9월 창간 당시 ‘역사발전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의 수립’을 표방했다. 2012년 가을호로 기획된 100호 특집에는 역사발전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가 곳곳에 보인다.

 1987년의 6월항쟁은 민주화운동의 정점뿐만이 아니었다. 민족주의·민중주의에 기반한 역사해석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9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로 세계 학계는 민중과 민족에 기반한 역사해석의 퇴조 경향을 보였지만 한국은 달랐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도면회(대전대·한국근대사) 교수는 78년 대학을 입학해 80년대 대학원을 마쳤는데, 당시 그에게 역사학은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에 복무하는 계몽적 활동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그런 관점은 이제 상당히 엷어졌다고 한다. 도 교수는 “90년 전후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다음 발전단계라고 여겼던 역사관에 균열이 오고,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그 반대편에 있는 로스토우의 근대화론 내지 최근의 뉴라이트적 역사관 역시 대안으로 삼을 수는 없어,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2000년대 이후 한국 근·현대사 연구는 사회사·문화사를 제외하면 매우 답답한 지경에 빠진 듯하다… 뉴라이트가 주도한 교과서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프레임을 선점 당해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견해도 내놨다. 그는 “이 시기(일제강점기)는 기존의 수탈과 억압, 저항의 관점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매우 다양한 인간·사회생활의 변화가 수반되었다”고 지적하며 “지난 10여 년간 근현대사 연구는 사학계보다는 국문학·사회학·정치학·여성학·경제학 등에서 새로운 관점과 방법론에 의해 이루어진 업적이 더 많은 듯하다”고 말했다.

 7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해 10월유신과 민청학련 사건 등의 영향을 받은 이영석(광주대·영국사) 교수도 말하기 쉽지 않던 역사학계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대학원 공부를 할 당시 “학문연구가 한국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진보를 이룩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떨치지 못했다”며 “한국사의 경우 동아시아 역사라는 맥락을 기반으로 다른 세계 및 지역과 문화접변, 타자에 대한 인식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집을 위해 ‘역사비평’이 미리 준비한 질문에 이미 우리 시대 역사학의 고민이 다 녹아 있다. ‘민중이나 계급과 같은 역사주체를 상정하는 것이 현재에도 연구나 실천 면에서 유효하다고 생각하는가’ ‘일제강점기-식민지시기에 대해서는 어떤 각도에서 성찰이 더 필요할까’ ‘민족/국가 단위의 역사서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100호 특집은 이달 말 출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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