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재인 캠프, 결선 투표 피하려 제주서 총력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5호 06면

25일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제주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1위로 호명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앉아 있는 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는 2~4위를 차지했다. [제주=연합뉴스]

25일 오후 8시 제주시 오라1동 한라체육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인 임채정 전 국회의장이 투표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다. 함성으로 가득 찼던 체육관엔 긴장이 흘렀다. “기호 1번 정세균 965표”…“기호 4번 문재인 1만2023표.”문 후보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장내는 “문재인”을 연호하는 소리가 메아리 쳤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첫 순회 경선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행사장인 한라체육관은 이날 오후부터 제주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지지자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경선장엔 취재진 100여 명을 비롯해 각 후보 지지자 등 1000여 명이 몰렸다. 각 캠프의 응원단은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후보의 이름을 외치며 세몰이에 나섰다. 대형 깃발, 밀짚모자, 손수건 등 다양한 응원 도구가 등장했다.
제주는 첫 순회 경선지인 만큼 ‘한국판 뉴햄프셔’로 불렸다. 민주당은 첫 행사인 만큼 흥행에 공을 들였다.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포함해 현역 의원 60여 명이 출동했다. 비보이와 사물놀이의 합동 공연도 있었다. 이해찬 대표는 축사에서 “오늘, 내일이면 선거인단이 100만 명을 넘어선다. 100만 번째 선거인단은 추미애 최고위원과 하루 동안 데이트하기로 약속했다. 내가 ‘정권’ 하면 여러분은 ‘교체’라고 외쳐 달라”고 구호를 유도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손학규·김두관 ‘非文 연대’ 움직임
제주 경선에서 60%의 압도적 지지를 받자 문재인 후보 측은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문 후보는 ‘결선 투표까지 가지 않는 것’이 이번 경선의 목표라고 기세를 올렸다. 문 후보 측은 “손학규·김두관 후보에 비해 조직이 열세이던 제주에서 여유 있게 승리해 대세론에 탄력이 붙게 됐다. 민심이 경선에 제대로 반영되면 최종적으로도 과반 득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가 지난 15~17일 전국 유권자 2000명(유선+휴대전화)을 대상으로 실시한 민주당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41.1%의 지지를 얻었다. 조사 대상을 ‘민주당 지지자’로 좁히면 지지율은 60.4%로 올라간다. 이날 제주 경선 결과와 거의 일치하는 수치다. 손학규(18.8%)·김두관(7.7%)·정세균(3.7%) 후보가 뒤를 잇지만 차이가 크다.

文의 환호 vs 非文의 당혹  민주당 첫 경선

문 후보가 조기에 승부를 가리겠다는 이유는 ‘비(非)문재인 후보’들의 연대로 인한 결선투표의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서다. 실제로 2·3위를 달리는 손학규·김두관 후보 캠프는 ‘비문 연대’를 위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경선이 결선투표까지 이어지면 세 명의 후보가 연대해 2위에게 표를 몰아줘야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문 후보 캠프의 진선미 대변인은 “선거는 생물과 같다. 연대가 가져올 효과를 미리 계산하기 힘들다. 만약 결선투표에 들어가 1대1 구도가 형성되면 문 후보에 대한 공격이 더 거세져 본선에 나가기도 전에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문 연대’ 결성의 전제가 ‘결선투표 돌입’이란 점에서 비문 후보들에게도 어려움이 있다. 김두관 후보 캠프 관계자는 “2위 후보가 1위(문재인 후보)와의 격차를 줄인 상태에서 결선투표에 들어가야 비문 연대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그러려면 1라운드에서 2위가 의미 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고 전망했다.
 
非文 후보들 “모바일 투표 방식 文에 유리”
비문 후보들은 이날 모바일 투표 방식이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하게 적용됐다는 의혹을 내놨다. 김두관 후보 측은 “모바일 투표에서 기호 1∼3번 중 하나를 누르더라도 4번 문재인 후보의 이름을 다 들어야만 투표를 한 것으로 카운팅이 됐다”며 “예를 들어 폰뱅킹을 할 때 누가 9번 항목까지 다 듣고서 버튼을 누르느냐. 1, 2, 3번 후보 이름만 듣고서 전화를 끊은 사람들은 투표를 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주장했다.

모바일 투표 신청자 3만2984명 중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가 1만9345명으로 투표율이 58.6%에 그친 데 대해서도 후보들은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손학규 후보 측 인사는 기자들에게 “지난 두 차례 전당대회 투표율을 고려하면 최소한 80%는 돼야 정상”이라고 말했다.행사에선 매끄럽지 않은 장면도 연출됐다. 합동연설 때 문재인 후보의 연설은 47초 먼저 끝났다. 연설시간 12분을 측정하는 실무자의 판단 착오 때문이었다. 문 후보는 ‘땡’하는 종료와 함께 마이크 볼륨이 꺼지자 손뼉을 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문 후보는 기자들에게 제주도 방언으로 “요망지게 일 허쿠다. 하영 도와줍서. 고맙수다(꿋꿋하고 야무지게 일할 테니 많이 도와주십쇼. 감사합니다)”라며 제주도민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당초 그는 합동연설 말미에 이 방언을 쓰려고 준비했지만 당 선관위의 실수로 연설시간이 줄어드는 바람에 말하지 못했다.
반면에 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는 굳은 표정으로 행사장을 서둘러 빠져나와 참모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자리를 떴다. 그러면서 “아직 기회는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손학규 후보 측 김유정 대변인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김두관 후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 시작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내달 6일 광주 경선이 변수
그동안 네 명의 후보는 첫 경선지인 제주에 각별한 정성을 들였다. ‘제주 대혈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수시로 제주를 방문했다. 조직력으로 기선을 제압하려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면 전체 경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특히 이번 순회 경선은 첫 승기를 잡은 후보가 이후 경선에서 유리한 밴드왜건 효과가 클 전망이다. 5년 전과 달리 경선 일정이 촘촘하기 때문이다. 제주 경선에 이어 다음 날이 바로 울산 경선이다. 다음 달 16일까지 13번의 경선이 이어진다. 경선의 최대 승부처는 민주당의 심장이라 할 광주·전남(9월 6일), 부산(9월 4일), 서울(9월 16일), 경기(9월 15일) 등이다. 이들 지역은 상징성이 강한 데다 선거인단 규모도 크다.
순회 경선에서 1위 후보가 5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지 못하면 1위와 2위 후보 간 결선투표가 23일 실시된다.

합동연설에서 네 후보는 하나같이 자신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이길 경쟁력 있는 적임자란 점을 부각시켰다.
첫 번째로 나선 손학규 후보는 “제주도민은 안다. 태풍이 한번 불어야 바닷물이 뒤집히고 뒤집혀야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것을. 선거 이대로는 어렵다. 어설픈 대세론으론 박근혜 이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연단에 오른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를 넘고, 박근혜를 꺾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다. 이길 수 있는 후보에게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김두관 후보는 서민 이미지를 강조했다. “유신후보 박근혜와 맞설 수 있는 서민후보가 누구입니까”라며 연설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정세균 후보는 제주도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면서 “20년 민주당원으로 당이 요구할 때마다 헌신해 온 정통 민주당 후보”임을 내세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