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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15m 강풍·눈보라 … 6178m 정상 코앞서 발길 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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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주펑 앞 고원에 펼쳐진 케른(티베트 불교의 탑)과 오색깃발 룽다. 청소년오지탐사대원들이 그 앞을 걷고 있다.

‘코오롱 청소년오지탐사대 위주펑(6178m·玉珠峰)팀’은 홍성택 대장과 12명의 대학생으로 꾸려졌다. 홍 대장을 제외하곤 해발 3000m 이상을 경험한 대원이 한 명도 없다. 평지에 사는 사람이 높은 곳에 올랐을 때 겪는 고소 증세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원들은 패기와 열정으로 꿋꿋하게 탐사 일정을 소화했다.

위주펑 서봉의 빙하구역을 탐사하고 있는 대원들. 중국 칭하이성은 해발 3000~5000m의 고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5070m에 만들어진 베이스캠프

소설 『서유기』의 배경으로 들어가는 여정은 고난의 길이었다. 바다 건너 산 넘고 물 건너 사막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위주펑에 도달할 수 있었다. 칭하이성의 성도, 시닝(西寧)은 베이징에서 약 2000㎞ 떨어져 있다. 시닝에서 전세 버스를 타고 거얼무(格<5C14>木)까지 762㎞, 이곳에서 이틀을 묵으며 베이스캠프에서 먹을 식량을 준비했다. 칭하이성 등산협회에서 등반 장비도 빌렸다. 중국어 통역은 최수진(25·고려대 4년) 대원이 전담했다.

거얼무에서 베이스캠프까지는 황량한 사막길을 150㎞ 더 달려야 한다. 티베트 라싸가 종점인 총연장 3901㎞의 109번 국도는 중국 정부가 티베트로 가는 칭장철도를 놓기 위해 건설한 도로다. 1950년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이 길을 따라 들어가 티베트를 유린했다. 국도변에는 군부대가 즐비하다. 티베트에서 소요가 일면 이 부대가 투입된다고 한다.

탐사 시작 엿새 째인 지난 7월 25일. 위주펑 남쪽 해발 5070m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캠프에 들어가자마자 토실토실한 흰색 엉덩이를 뽐내는 티베트 가젤이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하지만 황홀한 기분은 잠시뿐. 이내 뒷머리가 묵직해졌다. 고소 증세가 시작된 것이다. 이튿날 증세는 더 심해졌다. 중증에 해당하는, 구토를 하는 대원이 절반이나 됐다. 보통은 구토를 하면 하산 명령이 내려진다. 그러나 베이스캠프에서는 돌아갈 곳이 없다. 베이스캠프에서 가장 가까운 게스트하우스(4130m)까진 30㎞를 걸어 내려가야 한다. 다시 올라오는 교통편도 마땅치 않다. 참고 견뎌야만 했다.

1 대원들이 칭하이성 호조 지역의 구불구불 산길을 걷고 있다. 2 권투시합 벌이는 고산 쥐. 마냥 귀엽다.

캠프 주변에는 등반대가 버리고 간 음식물을 먹고 살찐 쥐가 많다. 꼬리가 짧고 햄스터를 닮은 쥐는 작은 토끼처럼 귀엽다. 이놈들은 해가 뜨면 어김없이 운동을 시작한다. 두 마리가 서로 상체를 들고 주먹을 날리는 모습이 권투 경기를 보는 것만 같다. 고소 증세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낙이다.

최수진 대원이 해발 5600m 만년설로 만든 팥빙수를 먹고 있다.

만년설로 만든 팥빙수

애초 계획에는 위주펑 등정이 없었다. 탐사를 주관하는 대한산악연맹 측에서도 홍성택 대장에게 “등정 시도는 하지 마라”고 일렀다. 고산 등반 경험이 없는 12명의 학생을 이끌고 6000m 이상 산에 오른다는 것은 무리여서다.

하지만 베이스캠프에 들어서자 홍 대장은 줄곧 등정에 욕심을 냈다. 그는 “20대 초·중반 젊은 대원들에게 험난한 등반 과정과 등정의 기쁨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홍 대장은 베링해 횡단과 그린란드 횡단, 그리고 3극점(에베레스트·남극·북극) 도달을 마친 베테랑 탐험가다.

7월 28일. 비로소 12명 대원들이 모두 정신을 차리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처음으로 전 대원이 한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홍 대장은 “이제 절반 온 셈이다. 5000m 고소에 적응이 됐으니 위주펑 등반도 문제없다”고 사기를 북돋웠다. 한 가지 단서가 붙었다. “모든 대원이 함께 오를 수 있을 때 출발한다.”

D-데이는 7월 30일로 잡혔다. 하루 전, 위주펑 서봉 아래 8부 능선(5652m)까지 훈련 등반에 나섰다. 탐사대가 발족한 이후 첫 운행이었지만, 다들 무난하게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식량 담당 최민수(23·한국해양대 4년) 대원이 만년설을 깨 코펠에 담고 미리 준비한 단팥을 섞었다. ‘만년설 팥빙수’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능선에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다들 코펠을 들고 팥빙수를 들이켰다. 추위와 눈보라도 20대 청년들의 뜨거운 가슴팍에서는 봄눈 녹듯 녹아버렸다. 그동안의 훈련 덕분이다. 탐사대는 출국 전 두 달여에 걸쳐 북한산 등지에서 맹훈련을 했다. 12명 대원 중 대학 산악부 3명을 빼놓고 나머지는 야영도 처음이었다.

20kg 배낭을 메고 등반하는 전재민 대원.

눈보라로 정상 문턱에서 하산

정상 공격은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첫째 날 캠프1(5650m)에 오른 뒤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정상을 공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히말라야에서 흔히 쓰이는 전략이다. 해뜨기 전에 바람이 잦아들고 날씨가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 공격 D-데이로 잡은 7월 30일은 오전부터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베이스캠프를 떠나 위주펑 등반 루트로 접근했을 때는 눈보라를 동반한 강풍이 탐사대 일행을 맹렬히 공격했다. 해발 5500m 지점, 능선에 올라서자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초속15m를 넘나들었다.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거친 눈보라가 얼굴을 때려 뺨에 칼집을 낼 것 같은 기세였다. 배낭 안에서 카메라를 꺼낼 엄두조차 못 낼 강풍이었다. 땅거미가 지고 사위가 온통 깜깜해진 밤 9시가 돼서야 간신히 캠프1에 텐트를 치고 몸을 의탁할 수 있었다.

바람은 잦아들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홍 대장은 “내일 새벽에 바람이 자면 정상에 가자”고 했다. 바람이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칠흑 같은 밤, 대원들의 말수가 현저히 줄었다. 고산 등반 도중 대화가 없다는 것은 초조와 불안감의 표현이다.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대자연의 위용 앞에 대원들은 두려운 낯빛을 감추지 못했다.

강풍은 그치지 않았다. 결국 정상을 등지고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하산하는 길은 다리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원들은 간밤에 무서운 강풍을 뚫고 캠프1까지 올라왔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았다. 전재민(23·인제대 2년) 대원은 “정상은 못 갔지만 다 같이 어려움을 함께 해서 의미 있었다”고 했다. 전날, 선발대로 출발한 그는 다른 대원들보다 3시간 먼저 캠프1에 도착했다. 하지만 다시 산을 내려와 뒤처진 대원의 배낭을 메고 올랐다.

탐사대는 이후 쿤룬산맥 트레킹에 나섰다. 베이스캠프 너머 고원에 ‘샹그릴라’가 있었다. 위주펑 남쪽 고원에 티베트인들이 세워놓은 거대한 케른(티베트 불교의 탑)과 룽다(케른에 거는 오색 깃발)였다. 동서로 50m에 달하는 거대한 깃발의 행렬이었다. 홍 대장은 “20년 동안 히말라야를 다니면서 본 케른 중에서 가장 거대하다”고 했다. 푸른 초원에는 야생 야크와 야생 당나귀, 티베트 가젤이 뛰놀았다. 망망무제의 고원에서는 그들이 당당한 주인이었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우리 일행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난생처음 보는 ‘동물’들이 신기하다는 눈빛이었다.

칭하이성(중국)=글·사진 김영주 기자

●위주펑을 등반하려면

쿤룬산맥의 동쪽 최고봉으로 그 아래로 칭장 고속철도가 통과한다. 6000m가 넘는 고봉이지만, 5000m 이상까지 차로 접근할 수 있어 중국 내에서 트레킹 피크로 인기가 높다. 남쪽 루트가 상대적으로 쉬운 코스이며, 베이스캠프에서 표고차 1100m를 올라야 한다. 북면 루트는 복잡한 빙하와 크레바스가 흩어져 있어 어렵다. 이중등산화는 물론 크램폰(12발 아이젠) 등 전문 등반 장비를 갖춰야만 한다. 칭하이성등산협회(0971-8221134, www.qma.org.cn)가 돈을 받고 등반 가이드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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