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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찬 40대女, 목숨끊은 이유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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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원의 술집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고 도주하는 과정에 무고한 주민을 흉기로 살해한 강남진(39)은 원래 전자발찌 부착 대상이었다. 강은 2005년 특수강간 범죄 두 건을 저지른 혐의로 7년 동안 복역했다. 지난 2월 강의 출소를 앞둔 검찰은 2010년 7월부터 시행된 전자발찌법을 근거로 “강에게 전자발찌를 채워달라”고 법원에 부착명령을 청구했다. 하지만 그에겐 전자발찌가 채워지지 않았다. 전자발찌법 시행 이전의 성범죄자에게도 전자발찌를 채울 수 있도록 한 조항과 관련해 일선 법원이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한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법원에서 그 이유로 판단을 보류했다.

 결국 강은 지난 21일 수원에서 술집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흉기를 휘둘러 이웃 주민 고모(65)씨를 살해하고 고씨의 아내 등 4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강과 똑같은 상황에서 성폭력 범죄를 다시 저지른 사람도 무려 19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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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발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강의 경우처럼 전자발찌 부착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아무런 제지 없이 돌아다니는 성범죄 전과자가 전국적으로 200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헌재가 2년째 위헌심판제청 사건에 대한 심리를 계속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일각에서는 “법원의 판단이 멈춰 있는 동안 ‘2019명의 강남진’이 아무런 통제장치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법무부에 따르면 2010년 전자발찌법 개정으로 법 시행 전 성폭력 범죄자에 대해 제한적으로 전자발찌 소급적용이 가능해졌다. 이후 검찰은 2675건의 소급적용 부착명령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 가운데 424건을 받아들이고 232건을 기각했다. 나머지 재범 우려가 있는 2019건은 헌재의 위헌심판 심리가 진행되면서 재판이 정지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헌재가 2년째 심리 중인데 일찍 선고가 났다면 강 같은 피의자에게는 전자발찌를 채워 재범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문제의 위헌심판제청은 2010년 8월 청주지법 충주지원이 냈다. 검찰은 지인의 8살 난 손녀를 성추행해 4년을 복역하고 출소를 앞두고 있던 김모(61)씨에 대해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청구했다. 이에 재판부는 “해당 법률이 위헌 소지가 있으니 판단해 달라”며 헌재에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했다.

 헌재는 2년 동안 고심을 거듭했다. 2010년 12월 공개변론을 열었다. 헌법재판관들이 직접 전자발찌를 차보기도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은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위헌 쪽에 선 재판관들은 “소급적용은 ‘법 시행 이전의 범죄를 소급해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어긋나고 ‘이중 처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합헌을 주장하는 재판관들은 “범죄 예방을 위한 보안처분적 성격이 강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당초 헌재는 23일 이 사건에 대해 선고를 내릴 예정이었지만 최근 심리를 계속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아직 재판관들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오는 9월 재판관 4명이 퇴임하는 상황에서 민감한 사안을 선고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무부와 검찰은 “전자발찌가 재범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며 헌재와 법원을 설득하고 있다. 실제로 전자발찌 제도 시행 이전 3년(2006~2008년) 성폭행범의 재범률은 14.8%였지만 제도 시행 이후 3년(2009~2011년)간 재범률은 1.67%로 크게 줄었다. 그만큼 성범죄 재범 방지 효과가 크다. 하지만 형사처벌 받을 것을 알면서도 자포자기식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성범죄자까지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난 21일 서울 광진구에서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인까지 한 서진환(42)이 그런 사례다. 전자발찌 착용이 부착자에게 극도의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전자발찌를 찬 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부산에서는 아동 성폭력 전력으로 전자발찌를 차고 있던 40대 여성이 수일간 실종됐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20일 충북 청주에서도 전자발찌를 찬 20대 남성이 자살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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