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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사사키와 이치로가 던진 화두

중앙일보

입력

한국의 야구는 그 도입과정에서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으로부터 바로 수입되지 않고 일본이라는 우회경로를 통해서 들어왔다. 가까운 일본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지만, 일본식 야구를 바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식야구와 미국식야구가 절충되는 형태의 발전모델을 정립해 오고 있다.

구단의 운영과 프랜차이즈 시스템의 체제면에서는 일본 영향권하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에 있어서는 일본식의 정교한 야구라기보다는 힘에 의존하는 미국스타일을 따르는 등 혼조된 야구문화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 프로야구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선수들의 일본식의 정교한 야구보다 호쾌한 메이저리그식 선수 스타일을 선호하게 된 점에는 미국의 파워가 일본의 세기보다는 한 수위라는 인식과 함께, 일본식 관리야구에 대한 저평가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야구스타일이 미국의 그것과 비교되어도 충분히 자생력을 가진 플레이 스타일이라는 것이 요즘 강력하게 부각되고 있다. 동양식 야구스타일로도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중하는 선수는 바로 시애틀 매리너스로 진출한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와 '천재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이들의 독창적인 동양식 야구는 메이저리그식 플레이의 대안 모델인 셈이다.

현재 두 선수가 진출한 시애틀 매리너스는 아메리칸 리그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의 승률(.735)을 기록하고 있으며 서부지구에서는 2위인 애너하임에 9게임차의 독주를 하고 있는 상태. 시애틀의 고공비행에는 위의 두 선수의 영입이 절대 전력의 상승효과를 가져왔다.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마무리투수를 맡고 있는 사사키는 현재 15세이브로 아메리칸리그 세이브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이치로 또한 득점권 타율 .560의 경이적인 기록과 15게임 연속게임안타, 리그 4위의 타율(.348) 등 메이저리그에도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며 리그 신인왕과 올스타 후보에 오를만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 사사키형 동양투수의 적용모델.

먼저 투수인 사사키의 직구는 미국의 시속 98마일의 강속구투수인 롭 넨, 빌리 와그너 등 최고의 마무리투수의 투구스피드보다는 현저하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는 마무리투수로서는 평이한 수준의 스피드를 좌우 코너웍으로 보충하고 있으며, 평균구속 145km정도의 직구와 포크볼만으로도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메이저리거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국내야구계가 투수들의 '최고스피드'에 지나치게 흥분하는 점에 대한 대안모델이다. 투수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스피드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평균구속을 우선적인 평가잣대로 사용하는 풍토가 정착되어야만, 제구력의 중요성이 재삼 강조될 수 있는 것이다.

◇ 이치로형 동양타자의 적용모델

다음으로 이치로는 타격에 있어서 메이저리그의 파워를 흉내내다가는 그들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극명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치로는 그들과 파워로 정면승부하기보다는, 뛰어난 배트스피드와 타격시 짧은 백스윙으로 그의 뒤쳐지는 파워를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이치로의 안타중에서 내야안타가 무려 13개로 아메리칸리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점은 동양 특유의 컨택트 스윙이 파워 배팅이 지배하고 있는 메이저리그의 틈새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인 셈이다.

컨택트 스윙을 구사 팔로우 스윙(Follow Swing)을 단축시킴으로서 1루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줄여나가는 것은 이치로만의 메이저리그 생존전략인 것이다.

'홈런이 야구의 꽃'이라는 야구격언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내리그에서는 홈런이 꽃일지는 몰라도 국제무대에서는 통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국내타자들이 풀스윙을 통한 홈런에 대한 욕심을 가지기보다는, 정교한 타격습성을 체화시키는 것이 우리 야구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사항인 것이다.

◇ 국내리그가 모색해야 할 방향성

국내리그 최고수준의 파워히터인 심정수선수의 펀치력도 메이저리그의 평균치정도에 불과한 것이라고 본다면, 우리 타자들이 벤치마킹해야할 타격스타일은 파워에 바탕을 둔 메이저리그식이 아니라, 가까운 일본식의 정교한 타격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일본선수들의 활약이 국내리그에 제시하는 화두는 동양식 야구의 장점을 집중적으로 부각, 개발하는 것이 메이저리그의 하드웨어적인 장점을 따라잡을려는 노력보다는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동양식 야구의 장점은 바로 정신적인 부분과 집중력, 그리고 야구센스 등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국내야구계의 가치기준을 정립시켜나가는 것이 국내야구의 세계무대에서의 자생력을 갖추고 한 단계 더 뛰어오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있지 않으면, 야구월드컵이 열리게 될 전망이다. 범세계화의 시류를 타고 있는 국제야구계에서 한국야구가 고유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그 체계화에 주력해야 할 때다. 이제는 '힘'을 중시하는 메이저리그식의 야구보다는 체화하기 용이한 정교한 동양식야구를 통해 세계야구시장의 틈새를 공략하는 생존전략으로 수정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그 틈새를 선점해버린 시애틀의 두 일본인, 이치로와 사사키의 끊이지않는 고속행보가 그래서 부러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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