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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내 그림 속 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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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푸른 나선’(1975) 앞에 선 한묵. 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2차 평면에 4차원의 우주 질서를 담겠다는 야심을 갖고 기하추상을 그렸다. [사진 갤러리현대]

고개를 외로 꼰 얼굴 없는 사람. 그 앞에는 흰 밥그릇, 뒤에는 창살이 있다. 크지 않은 이 유화의 제목은 ‘흰 그림’(1954), 그린 이는 재불화가 한묵(韓默)이다. 세상 나이로 올해 백수(白壽·99세)다.

 1914년 서울서 태어난 그는 18세에 만주로 건너갔고 26세에 도쿄에서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후 38선 이북 금강산 일대에서 그림을 그리다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갔다. 종군화가로 활동, 52년 장욱진·송혜수와 ‘종군 스케치 3인전’을 열었다.

 잡지 ‘신태양’의 표지화(1958)로도 세상에 알려진 ‘흰 그림’을 그는 “내 자화상”이라고 불렀다. 38선을 내려와 오갈 데 없고 어찌할 바 모를 답답한 심정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55년 김환기 당시 홍익대 미대 학부장의 추천으로 미대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됐다. 만년의 이중섭(1916∼56)과 정릉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61년 교수직을 버리고 홀연히 프랑스로 건너갔다. 청소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림을 그렸다. 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충격을 받고 3년을 끙끙 앓은 뒤 소용돌이 모양이 역동적으로 뻗어 나가는 원색의 그림을 그렸다. 당시 “어디가 끝인지 알 수도 없는 무한한 우주 속에 살면서 그 우주공간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적었다.

 한묵 개인전이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22일부터 열린다. 전시를 맞아 노화가가 서울에 왔다. 그는 2000년 심장 수술 이후 거동이 불편해 서예 외에는 이렇다 할 작업을 하지 못했다. 이중섭도 가고, 김환기도, 장욱진도 먼저 갔다. 살아 남은 그는 2003년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 전시에 초대돼 “저 파도를 보면 중섭이가 ‘어 왔느냐’며 손을 흔드는 것 같다”고 말해 좌중을 울렸다.

16일 전시장서 만난 그에게 ‘100세를 앞두고 있는데, 화가로서 행복했느냐’고 물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화가는 종이에 써서 건넨 질문을 큰 소리로 읽고는 이렇게 답했다. “난 나이를 잊어버리고 있소. 현재 내가 살고는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사람이거든. 모두 다 죽은 사람이거든요, 우리가. 죽음 가운데 있고, 그러면서 산다고 봐야 해요. 때가 오면 가는 거에요. 심각할 거 없어요.” 부인 이충석(81)씨는 “선생은 ‘붓대 들고 있다 씩 웃고 간다’고 말하길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파리 기메 국립아시아 미술관 피에르 캄봉 수석 큐레이터는 “한묵의 화폭은 형태와 기하학의 세계이지만, 그 구성은 인간성, 시(詩), 생기, 미래에 대한 믿음을 담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전시는 9월 16일까지. 캄봉을 비롯해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박고석 화백, 이지호 대전 이응로미술관장 등의 평문이 수록된 그의 첫 화집(마로니에 북스)도 출간된다. 02-519-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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