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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어퍼컷] 사투리의 재발견 … “니, 그 드라마 봤나, 재밌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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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은지, 서인국, 호야 등 주요 인물들이 전부 부산·경남 출신인 tvN ‘응답하라 1997’. ‘복고’ 코드와 사투리 연기가 잘 맞아 떨어진다는 평이다. [사진 tvN]

TV드라마가 부산 사투리에 푹 빠졌다. 부산 배경 드라마가 많아지면서다. 그간 드라마 속 사투리는 특정 지역·계층에 대한 편견을 담거나, 조폭이나 코믹 감초 역할 등 제한적으로 사용됐었다. 이제는 다양한 직종과 장르에서 사투리의 묘미를 선보이는 드라마가 늘고 있다. ‘주변부=지역언어’로 치부되던 사투리의 재발견이다.

 눈에 띄는 드라마는 MBC ‘골든 타임’이다. 부산 병원이 무대인 의학드라마다. 열성적인 의사상을 제시한 주인공 이성민을 비롯 송선미·엄효섭 등 극중 상당수의 의사·간호사들이 부산 사투리를 쓴다. 엘리트 전문직종의 상징인 의사라는 배역이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례적인 설정이다.

사투리 하면 서민, 촌티의 상징 쯤으로 여겨지는 공식을 깬 것이다. 특히 이성민과 송선미는 강한 악센트로 억세게만 보이는 부산 사투리 대신 부드럽고 단조로운 억양의 말투를 선보여, 현지 시청자들에게도 합격점을 받았다. 실제로 두 사람은 봉화(이성민), 부산(송선미) 출신이다.

 케이블 청춘 드라마로 대박을 치고 있는 tvN ‘응답하라 1997’도 부산이 배경이다. 신인답지 않은 당찬 연기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은지를 비롯 서인국·호야 등이 부산·경남 출신이라 수준급의 오리지널 사투리를 구사한다.

능청스런 사투리가 그저 웃음을 유발하는 주변부적 요소가 아니라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복고 코드, 10대 특유의 열성적 팬심에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이다.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팬들도 사투리의 묘미를 즐기고 있다. “서인국을 보니 부산 사투리 쓰는 남자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평과 함께 ‘은지 부산 사투리 모음’, ‘표준어 자막 버전 UCC’ 등 다양한 팬 영상물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말 방송에서는 “내가 백지 이런 날 주번에 걸리가 지금 정신 상가로븐께 홀딱 다 이따 비주께”라는 대사를 하면서 “내가 하필 이런 날 주번에 걸려서 지금 몹시 정신이 혼란스러우니 모든 것들은 나중에 구경시켜줄게”라는 자막을 달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KBS ‘해운대 연인들’도 있다. 열혈검사와 부산 횟집 아가씨의 엎치락뒤치락 로맨스다. 조여정·소연 등이 부산 사투리 연기에 도전한다.

 최근 종영한 SBS ‘추적자’의 박근형 사투리는 아직도 회자된다. “욕봤다, 욕보래이” 같은 짧은 경상도 사투리로 재벌회장의 동물적 노회함을 잘 드러냈다. 여기서 조폭 용식이는 전라도 사투리를 썼는데, 실제 전라도 출신이 아니면서도 배워서 해당 사투리를 하는 인물로 설정됐다. 사투리에 대한 지역적·계층적 고정관념을 역으로 이용한 캐릭터였다.

 부산 사투리 드라마가 늘어난 것은 무엇보다 부산 촬영 드라마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골든 타임’ ‘해운대 연인들’은 드라마로는 100% 부산에서 촬영한 첫 케이스다. ‘옥탑방 왕세자’ ‘더킹 투하츠’에 이어 방송 예정인 ‘뱀파이어 검사2’ 등 올 들어 10여 편의 드라마가 부산에서 촬영됐다. 지난해의 두 배다. 영화 쪽에서 로케이션의 명소로 자리잡은 부산의 제작 인프라를, 방송 드라마들이 적극 쓰기 시작한 셈이다. 영화는 ‘부산’ ‘범죄와의 전쟁’ 등을 필두로 ‘도둑들’ ‘연가시’ ‘이웃사람’ 등이 부산에서 촬영됐다.

 드라마평론가 공희정씨는 “사투리 드라마가 늘어나는 것은 타임슬립 등의 소재 다양화와 마찬가지로 콘텐트 다양화의 한 방편이다. 한국어의 다양한 묘미를 전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투리가 보조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극과 캐릭터를 살리는 주요 요소로 부각되면서 드라마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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