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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 화났다!

중앙일보

입력

아줌마들이 화가 났다. 양희은의 노래를 들으려고 콘서트장으로 몰려들던 아줌마들, 그리고 오삼숙을 응원하려고 TV 앞으로 몰려들던 우리의 아줌마들이 이번엔 직접 인터넷 무대에 올라가 제대로 한 판 벌여보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나섰다. ‘아줌마의 힘’이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며칠 전 어느 스포츠 신문을 통해 보도된 한 기사가 그 발단이었다. 최근 임신한 것으로 알려진 인기 연예인 최진실씨가 남양유업 전속모델로 8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가자 이 소식을 들은 아줌마들이 남양유업 홈페이지(www.namyangi.com)로 몰려가서 무더기로 항의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줌마들이 화난 이유는 간단하다. 턱없이 높은 광고 모델료가 결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되리라는 것이다.

"엄마들이 최진실 모델료 8억원을 부담하란 말이냐”, "8억원을 모델에게 주느니, 그 돈으로 차라리 분유 가격을 조금이라도 내려라”, “그 돈으로 제품 개발에나 신경 써라”는 등 거센 항의성 글은 물론이고, “남양유업 분유 이제 안 사겠다”며 불매운동을 전개하자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이런 글들이 하루에 최고 1천여 건이나 자유게시판에 올라왔고 그 결과 한 때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하니, 아줌마들의 성난 기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에 당황한 남양유업 측에서는 급기야 홈페이지를 통해 “8억원은 사실무근”이라고 공식 해명함과 동시에 문제의 기사는 오보였다고 주장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아줌마들의 빗발치는 항의는 누그러들지 않았고, 마침내 남양유업은 자사의 홈페이지 문을 닫아 버리고 말았다.

이번 사태는 한국의 아줌마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온 사회에 울려 퍼지게 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아줌마’란 단어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이미지로 비추어져 왔다.

아줌마라는 호칭 뒤에는 늘 억척스럽고, 무례하고, 수다스럽고, 촌스럽다는 식의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성이 있다. 남자, 여자, 그리고 아줌마”라는 영화 ‘코르셋’의 대사처럼, 아줌마는 제3의 성으로 분류돼 남성은 물론이요, 심지어 같은 여성인 ‘아가씨’들로부터도 달갑지 않은 존재로 간주되곤 했다.

인터넷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채팅방에 상주하는 카사노바들이나 게시판을 어지럽히는 사이버 ‘마초’(남성 우월주의자)들이 가장 노골적으로 집적거리는 대상이 바로 아줌마다. ‘소비자는 봉’이라는 신조로 똘똘 뭉친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이 가장 만만한 구매집단으로 생각하고 마케팅의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줌마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인터넷 환경에서는 여성적 가치가 급부상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몇몇 사이버 페미니스트들의 장밋빛 낙관론이나 감성과 상상력이 중시되는 정보사회는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던 존 네이스비트의 호언장담은 아직 ‘희망사항’일 뿐이다. 인터넷의 공간에서 아줌마들은 단지 객체일 뿐이었다. 그러던 아줌마들이 드디어 인터넷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아줌마들에게 인터넷이란 그 옛날 우리 할머니들 시절의 빨래터 같은 곳이란 생각이 든다. 빨래터는 마을 아줌마들이 모두 모여서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까지 다 털어놓던 소통과 정보교류의 공간이었다.

흐르는 시냇물보다 더 커다란 목소리로 마음껏 수다를 떨던, 그리고 힘껏 내리치는 빨래방망이로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던 곳이 바로 빨래터였다. 동네 어귀의 빨래터는 바로 아줌마들의 광장과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 빨래터는 사라져 버렸고, 아줌마들은 각자의 집안에 갇혀 버렸다. 소통과 교류는 끊어지고 단절과 고립이 찾아왔다.

인터넷은 이들 아줌마들에게 다시 빨래터를 제공해 주었다. 육아와 가사에 매몰된 채 사적 공간에 고립되어 있던 아줌마들이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공적 담론의 장으로 진출한 것이다. 인터넷은 그 옛날의 빨래터보다 훨씬 더 넓고 편리한 소통과 교류의 공간이다. 이제 아줌마들의 수다는 좁은 동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여성으로서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더 넓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제 그들은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 차원을 넘어 스스로의 권익 보호와 소비자로서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위해 적극적인 실천에 나서고 있다. 가상사회의 주체적인 한 구성원으로서 ‘아줌마의 힘’을 유감없이 과시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힘들게 빨래방망이를 내리칠 필요 없이 가벼운 마우스 클릭만으로 말이다.

민경배(사이버문화연구소 소장)

자료제공 : i-Weekly(http://www.i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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