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나선에 전기·인프라 깔아주고 사실상 개발 독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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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왼쪽)과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장관)이 14일 베이징에서 서명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베이징 신화=연합뉴스]

14일 열린 북·중 중조합작지도위원회(中朝合作指導委員會) 회의의 핵심은 중국의 북한 인프라 건설과 제도적 지원이다. 특히 나선(나진·선봉) 경제개발구에 대해 전기 설비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중국 주도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중국 주도 개발에 반발했던 북한이 이 같은 합의를 한 배경에는 북한 경제의 절박성과 함께 김정은 대외정책의 변화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금까지 북한의 두 개발구에 외국자본 투자가 더뎠던 가장 큰 이유는 인프라 부족과 제도적 지원 부재였다. 실제로 북한식 개혁·개방의 상징인 나선 개발구의 경우 도로망은 물론 전기가 부족해 현지 개발에 나선 중국과 러시아 기업이 공사를 중단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또 투자를 해도 북한 당국이 지원은커녕 투자금을 강제로 빼앗는 일도 벌어졌다. 중국 랴오닝(遼寧)성에 본사를 둔 시양그룹(西洋集團)은 북한에 2억4000만 위안(약 425억5000만원)을 투자했다가 북한 의 일방적 계약 파기로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최근 쫓겨났다.

 
중국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조중개발합작연합지도위원회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측 공무원이 위원회에 포함돼 있지만 정책 주도권은 북한이 쥐고 있어 효율적인 개발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롭게 구성되는 두 개 위원회는 중국과 북한의 공동 합의로 개발을 추진하도록 제도적 보장장치를 둘 가능성이 크다.

 지린(吉林)성 정부가 나선 개발구 관리를 위해 연말까지 100명의 공무원을 파견하겠다고 최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는 중국은 동해로의 출구인 나선 경제구 진출을 보장받고, 북한은 황금평과 위화도를 개발하는 윈-윈 게임으로 볼 수 있다.

 경제구 내 시장경제 도입에도 합의했는데 이는 논란이 예상된다. 중국은 사유재산 모두 인정을, 북한은 일부 인정을 주장하고 있어서다. 나선 개발구의 경우 자영업자는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만 회사의 경우 부분적으로만 인정하고 있다. 고정된 건물에 상점을 갖고 있는 상인은 모두 회사 소속이다.

 중국 측이 개발구의 기업개발 원칙을 들고 나온 것은 민영기업에 대한 자기책임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북한은 중국 국영기업 투자를 원하고 있어 향후 중국 측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나선 개발의 경우 중국 최대 국영 항만운영업체인 자오상쥐(招商局)와 최대 국영 건설업체인 중젠(中建) 등 국영기업 참여가 결정된 상태다.

 장 부위원장 일행이 14일 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동북지방 경제시찰에 나선 것은 향후 북한 경제 개혁과 관련, 눈여겨볼 대목이다. 북한 제2 권력자가 20여 명의 실무자를 이끌고 산업현장을 둘러본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을 만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시위(楊希雨)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은 “북한 상황을 볼 때 장 부위원장의 방중은 시급한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분명하며 김정은의 새로운 대외정책 변화와 관련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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