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⑮ 이순신의 위기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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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 격전지 울돌목 위 진도대교 야경. [사진 이영관 교수]

조선왕조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이룬 업적과 그들의 유적들은 리더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이 될 수 있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하다 보면 세계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한국형 리더십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시리즈는 고불 맹사성,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순으로 그들의 리더십을 소개한다.

장찬우 기자

이순신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왜의 간계에 말려든 선조가 부산의 일본 수군 본영을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고 이순신이 이를 거부하면서 역적으로 몰린 것이다. 그가 한양으로 압송돼 호된 고문을 받는 동안 새롭게 삼도수군통제가 된 원균은 거제의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했다. 경상우수사 배설만이 한산도로 후퇴해 12척의 전함을 보존할 수 있었다.

  전의를 상실해 버린 조선 수군의 장수로 다시 부임한 이순신은 13척으로 열 배가 넘는 왜의 함대와 맞서야만 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아군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었다. 기존의 전투에서는 왜군의 전력보다 아군의 전력이 떨어지긴 했어도 아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병사들을 정신적으로 무장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명량대첩의 경우는 달랐다.

  이순신은 장졸들에게 살기 위해 전쟁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각오로 전쟁에 임해야 함을 각인시키는데 주력했다. 비록 우리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할 수 있다면 조선의 백성으로서 뜻있는 죽음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의 정신 즉, 살려고 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넣은 것이다.

  점차 장졸들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번도 전쟁터에서 패한 적이 없는 이순신이 이번 전쟁에서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장군은 장졸들의 충성에 화답하듯 명량해협의 지형조건과 조수의 흐름을 시의 적절하게 활용해 소수의 병력으로도 다수의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했다. 마을사람들까지도 전쟁에 참여했다. 아낙네들은 강강술래 춤을 추며 조선 수군의 세를 과시했고 남정네들은 어선을 타고 나와 군선처럼 위장했다.

  결국 1597년 9월에 치러진 명량대첩에서 울돌목의 지형적 특성과 물살의 흐름을 적절히 활용해 왜의 함대를 괴멸시켰다. 명량해협이라 불리는 울돌목은 해남과 진도를 잇는 진도대교 아래쪽으로 수심은 25m 미만이지만 격류가 부딪쳐 물살이 매우 거칠고 기이한 소리를 질러대는 독특한 지형이다.

  정보전에 능했던 이순신은 왜의 함대가 울돌목을 통과할 것이라는 첩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적극적으로 적의 함대를 유인했다. 울돌목의 물살은 폭이 좁은 해협을 통과하면서 빨라지는데 인력으로 배를 움직여야 했던 당시에 왜의 전선들은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순신은 명량대첩을 치르면서 일자진전법을 구사했다. 사실 이 전법은 특별한 전략을 수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직선으로 전투선을 배치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략이다. 13척의 전함밖에 남아 있지 않아 다른 전법을 구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울돌목의 지형이 다양한 전법을 구사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공간구조도 아니었다.

  명량해협에서 조선 수군과 마주친 왜의 전함 133척은 줄어든 조선 함대를 얕잡아 보고 울돌목으로 밀려들어 왔다. 이순신 함대는 한동안 밀려드는 왜의 전선들을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울돌목의 용트림이 점점 거세지자 왜의 전함들은 서서히 자세를 잃기 시작했다. 조선의 함대에서도 적선을 향해 포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거센 물살에 뒤틀리며 저항하던 왜군의 비명소리는 점점 격노하는 울돌목의 물살 속으로 빨려 들었다. 결국 조선 수군은 한 척도 잃지 않은 채 왜함 31척을 수장시켜 대승을 거뒀다.

 

이순신 장군

1545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충청도 아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며 무예를 연마했다. 32세 때 식년 무과에 급제했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리더십으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영웅이 됐다.



이영관 교수 1964년 충남 아산 출생.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교 호텔스쿨 교환교수, 국제관광학회 회장, 한국여행작가협회 감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조선의 리더십을 탐하라』 『스펙트럼 리더십』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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