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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해학·휴머니즘 그린 서양화가 이만익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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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2월, 서울 신사동 화실에서. 따뜻한 미소를 짓는 이만익 화백 뒤로 그의 ‘따뜻한’ 작품들이 보인다. 고향, 가족, 설화 등이 작품의 소재였다. [사진작가 이은주]

힘있고 단순한 선, 간결한 형태, 토속적 색감.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인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따뜻하다. 때론 기상이 넘치고, 때론 삶의 신산함을 서로 나누는 온기와 해학이 느껴진다.

 그림 문외한이라도 그의 그림은 잘 안다. 처음 보아도 익숙한 듯 정겹고 편안하다. ‘한민족의 자화상을 가장 한국적으로 그리는 화가’라고 불리던 서양화가 이만익이다. 그가 9일 오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천식을 앓던 그의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 악화됐다. 74세.

 그에 대한 이야기는 ‘미술신동’ 시절로부터 시작한다. 1938년 황해도 해주 출신인 그가 보고 자란 고향의 골짜기, 강, 가족상, 복숭아 나무는 평생 조형의 원천이 됐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미술반 활동을 했고, 경기중 3학년이던 1953년 국전에서 두 작품으로 입선했다. 당시 ‘중학생 국전 수상’이 논란이 돼 ‘대학 3학년 이상 출품가능’이란 조항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기다렸다는듯 서울대 미대 회화과 3학년 때 국전에서 특선했다. 이후 세 차례나 연속 특선했다.

 박서보, 윤명로 등과 어울리던 당시 그의 그림은 서구 표현주의 화풍에, 전후 우울한 현실을 담았다. 작품세계의 변화는 1975년 35세에 떠난 프랑스 유학이 계기였다. 서구미술의 본고장에서 오히려 한국적 미감에 눈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처용가’ ‘서동요’ ‘주몽’ 같은 고전, 설화, 민담 속 인물들을 그려냈다. 한용운, 서정주의 시도 테마였다. 휴머니즘과 해학이 넘치는 그만의 토속 한국인이 탄생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미술감독을 지냈고, 뮤지컬 ‘명성황후’,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도 제작하면서 대중과 만났다.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글을 잘 썼고, 시를 낭송하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건강 악화 속에도 지난해까지 신작을 발표한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예술가인 나마저도 인간을 위하지 않으면 살벌한 세상이 올 것 같아 작품의 중심을 휴머니즘에 놓았다. 사람을 중시하다보니 원근법과 명암이 무시됐고 색이 강렬해지면서 평면적 화폭 안에 사람을 납작 눌러넣은 듯한 형상이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중앙미술대전 운영위원을 지냈고 제5회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대화씨와 아들 민겸(MK컬렉션 대표), 딸 민선(콘텐트 디자이너)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1일 오전 9시 30분. 장지는 서울추모공원. 02-3410-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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