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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낮춘 일자리, 평생 취미, 관심사 나눌 친구를 찾아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현역 은퇴를 앞둔 50대 초?중반의 방향설정이 인생 후반전의 승패를 가른다. 중앙SUNDAY는 은퇴 후 만족스러운 인생2막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비결을 들어봤다. 각각의 처지와 추구하는 삶의 형태, 만족 기준 등은 서로 달랐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키워드는 있었다. 바로 ‘균형 잡힌 생활’이었다. 적당한 일거리와 놀거리가 있고, 스스럼 없이 어울릴 친구나 동호인들이 항상 주변에 있었다. 이 3박자가 어우러져야 은퇴 후 생활이 여유롭고 행복했다. 유쾌한 인생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3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 25층의 한 회의실. 30여년에 걸친 직장 생활을 지난해 정리한 이근수(59)씨는 지난 6월부터 이곳에서 일본어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 모임은 시니어 포털사이트인 유어스테이지의 일본어 클럽에서 만난 사람들이 결성한 것이다. 포털사에서 장소 등을 제공하고 강사와 강의 일정은 회원들이 알아서 짠다. 50세 이상만 참여할 수 있다. 이씨는 퇴직 후에도 경력을 살려 화공약품 매매를 중개하는 인터넷 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직장생활을 할 때보단 시간적 여유가 많다. 이씨는 “학원에 가면 젊은 사람들 틈에 껴서 잘 못할까, 혹시 폐가 될까 스트레스가 많다. 하지만 이 모임은 진도를 천천히 나가기 때문에 부담이 없고, 동년배들이라 마음도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어를 잘하는 딸과 대화거리가 생긴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덧붙였다. 이 모임 초급반 회원은 모두 11명. 50대가 6명, 60대가 5명이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어색함은 없다. 대부분 현업에서 한발 물러나 있지만 바쁘게 생활하고 노후자금에 대한 압박이 적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었다.

모임 회원인 차도련(59·여)씨는 오랜 기간 약국을 운영했지만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 사회 공헌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일본선교에 관심이 있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일본 유학도 꿈꾼다”고 말했다.

은퇴를 하면 사회에서 이해관계에 얽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갈수록 희미해진다. 대신 공통의 관심사를 갖거나 종교활동 중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나이가 들수록 돈독해진다. 최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시니어 모임이 활성화되는 이유다. 최근까지 현직에 있었던 50대는 인터넷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사회 봉사활동 등에도 적극적이다. 유어스테이지 회원은 약 35만 명이며 이곳엔 일본어 클럽과 같은 모임이 500여 개 결성돼 있다. 노인 대상 인터넷 신문인 시니어넷, 노인 일자리 사업을 하는 한국시니어 클럽 등에서 결성된 모임도 활발한 편이다.

김형래 시니어 파트너즈 상무는 “50대 중후반은 돈을 벌기 위해 공부하고 채우는 데 급급했던 젊은 시절을 뒤로하고 인간의 본성인 인간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다른 차원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는 시점”이라면서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영적 건강에 관심을 갖고 추구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의 50대들은 일이 취미이자 특기였던 세대다. 주말도 휴일도 없이 직장에 올인했기 때문에 대부분 이렇다 할 취미가 없다. 이를 증명하듯 한국 50대 중 절반은 취미로 ‘TV 시청’을 꼽는다. 2위는 ‘편히 쉬기’다. 하지만 은퇴 후 시간이 많이 생겼다고 갑자기 취미를 만드는 건 한계가 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좋아하는 것을 찾아 평생 취미로 삼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추정운(58)씨는 일과 취미 사이의 균형점을 잘 찾아낸 50대에 속한다. 추씨는 2004년 KT에서 퇴직했다. 일은 여전히 하고 있다. 현역 시절엔 주로 예산·회계 업무를 담당했지만 퇴직 후엔 다니던 회사에 계약직으로 재취업했다. 맡은 업무는 인터넷 장비를 회수하는 일로 현역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다.

그는 “돈보다는 내게 뭔가 계속할 일이 주어졌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장급으로 퇴직한 분도 경비업무를 하고 있지만 모두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고 전했다.

그가 직장을 그만두기 전부터 꾸준히 공을 들여온 것은 글쓰기다. 추씨는 2002년 등단을 했고 시집과 수필집 등 3권의 책도 출간했다. 노인 대상 인터넷 신문인 실버넷에서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추씨는 “취미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이 됐고 집에서 대화도 늘었다”고 말했다. 매일 책상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추씨의 모습을 보고 자란 두 아들도 아버지 옆에서 책읽는 습관을 들였다. 그러는 동안 아들들의 성적은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뛰었고 상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큰아들(29)은 현재 산업디자이너로 일하고, 작은아들(26)도 최근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의 향후 계획도 글쓰기를 하면서 구체화됐다. 추씨는 “소속 문학회에서 보육원과 결연을 맺고 있어 글쓰기 지도를 하는데, 가르친 학생 중 도내에서 상을 타는 것을 보고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추씨는 “복지기관에서 상담 업무를 하면 적성에 맞을 것 같아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회사 임원으로 50세에 은퇴한 백만기(61)씨도 젊은 시절부터 은퇴 이후 할 일에 남다른 투자를 해왔다. “40대 때부터 점심시간을 쪼개 갤러리를 돌아보고, 주말에도 꾸준히 전시회를 보거나 무엇인가를 배우러 다녔다”는 게 그의 말이다. 2003년부터는 친구 3명과 ‘코리안 벤처스’라는 그룹을 결성해 드럼을 맡고 있다. 더 벤처스의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로 3개월에 한 번 공연도 연다. 백씨는 “그림 외에도 바이올린, 사물놀이,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배웠고 사진과 건축, 와인, 커피 등도 공부했다”며 “앞으로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후자금은 은퇴를 앞둔 모든 사람의 관심사다. 현역 시절보다 돈을 많이 벌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생활비를 갑자기 줄이기도 힘들다. 하지만 은퇴 후 필요한 노후자금이 금융사나 보험사의 입맛에 맞게 부풀려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노후자금이 부족한 경우, 좋아하는 일과 관련된 창업도 고려해볼만하다. 물론 과욕을 부리거나,‘잘나가던 시절’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금물이다.

성기용(51)씨는 인생의 후반전을 ‘내 일’에 집중하기로 하고 창업 전선에 뛰어든 경우다. 성씨는 2010년 10월, 건설회사 임원을 마지막으로 25년 월급쟁이 생활을 접었다. 그는 “기업 안에서는 뭘 해도 윗사람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삶의 의욕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퇴직 후엔 취미로 해온 비디오 촬영 실력을 살려 개인·기업의 영상 홍보물을 제작하는 업체를 창업했다. 성씨는 “다니는 교회에서 봉사활동으로 촬영을 자청했고, 인터넷 생방송 진행, 인터넷 매체 영상을 공급하면서 감각을 익혔다”고 말했다. 창업을 준비하는 동안 소득이 없어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했다. 성씨는 “아이들 학원을 끊고 온라인 강좌로 돌리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다행히 잘 따라와줘 가족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성씨가 운영하는 회사의 올 상반기 매출은 약 1억원으로 한 달에 400만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는 “아직 수익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며 “영상교육으로 사업을 조금씩 확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문창석 인턴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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