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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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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트로트 감수성으로 읊는다 웃기면서도 서러운 인생

시 - 권혁웅 ‘도봉근린공원’ 외 22편

권혁웅 시인에게 시는 구원이었다. “산동네에 살던 사춘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덜컥거릴 때 언어로 집을 짓고 거기서 평온을 느꼈다. 원하는 세상을 언어로 만들고 내 입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했다. 시를 쓰며 세월을 견뎌내던 소년이 시인이 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인 권혁웅(45)은 변신을 거듭한다. 연애시집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부터 패러디가 돋보인 『마징가 계보학』, 정치풍자를 담은 『소문들』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권씨는 “시집을 한 권 털어버리면 몸이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이후 6개월 정도 시를 안 쓴다. 다른 세계로 건너갈 준비를 한다”고 했다.

 현실에 날 선 칼을 들이댔던 『소문들』은 어느새 끝난 걸까. 미당문학상 본심에 오른 그의 근작은 ‘일상의 만화경’이다. 굳이 줄을 세운다면 어린 시절 살았던 서울 성북구 삼선동 산동네의 이야기를 그려냈던 『마징가 계보학』 쪽에 가깝다.

 예심을 맡았던 조재룡 고려대 교수는 “권 시인은 시작법에 능해 깔끔한 건축물을 구축한다. 그가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가 깊은 성찰을 펼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소위 ‘권혁웅판 생활의 발견’이다.

 예로 순댓국집에서 애인과 헤어진 남성(‘애인은 토막난 순대처럼 운다’), 밤새 술 퍼먹다 구조조정 당한 중년 사내(‘24시 양평해장국’)가 시로 태어났다. 천변을 걷고 근린공원에 다니며 보고 느낀 것들도 시로 엮였다.

 -일상을 주목하게 된 이유라면.

 “늙어가는 것, 젊지 않다는 자각이다. 외모는 중년이지만 내면에는 소년 같은 욕망이 살아 있다. 현실과 청춘의 간극에서 느끼는 순정을 담았다.”

 그래서일까. 권씨의 시에 ‘트로트, 혹은 신파적 감수성’이 흐른다. 누추한 거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존재조건을 훑는다. 당연히 쓸쓸함이 묻어난다. 카페를 본뜬 싸구려 술집 ‘애모’에 앉은 중년의 남자에게 시인은 말한다. ‘네가 그토록 애모했던 것, 그건 청춘이 아니라/청춘이 문 닫고 떠난 뒤에/다시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것’(‘애모’)이라고.

 피할 수 없는 세월, 그 나이 듦에 맞서는 보통 사람들의 몸부림이 해학스럽다. 웃기면서도 서럽다. ‘노년이란 몸의 지방자치제인데/팔다리 따로 노는 지역감정이거나 오감의 님비현상인데/여기 천변에선 모두가 일사불란이다/차밍스쿨 다닐 때처럼 선 위의 중앙집권제다’(‘천변체조교실’)의 구절이 그렇다. 심지어 좌골신경통과 오십견에 시달리는 고모가 화툿장을 놓지 않는 것은 시간에 저항하기 위한 것(‘고스톱 치는 순서는 왜 왼쪽인가’)이라고 읊는다.

 권씨는 “시는 세속의 자식이다. 그래서 지지고 볶고 사는 매일매일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시인에게 세상은 일종의 시트콤에 가깝다. 마치 다음처럼 말이다.

 ‘맨발 지압로에는 볼일 급한 애완견이 먼저 지나갔고/음이온 산책로에는 보행기를 끄는 고목이 서 있으니/놀랍도다, 이 저녁의 평화는 왜 이리 분주한 것이며/요즈음의 태평성대는 왜 이리 쓸쓸한 것이냐’(‘도봉근린공원’ 중)

 어떤가. 헛헛한 웃음이 터지는가. 산다는 건 이런 희비극의 뒤섞임이 아닐까.

◆권혁웅=1967년 충북 충주 출생. 97년 계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소문들』. 비평집 『미래파』 『시론』 등.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지금 애인의 울음은 변비 비슷해서 두 시간째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몸 안을 지나는 긴 울음통이 토막 나 있다

신의주찹쌀순대 2층, 순대 국을 앞에 두고

애인의 눈물은 간을 맞추고 있다

그는 눌린 머리 고기처럼 얼굴을 눌러

눈물을 짜낸다

새우젓이 짜부라든 그의 눈을 흉내 낸다

나는 당면처럼 미끄럽게 지나간

시간의 다발을 생각하고

마음이 선지처럼 붉어진다 다 잘게 썰린

옛날 일이다

연애의 길고 구부정한 구절양장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빨래판에 치댄 표정이 되었지

융털 촘촘한 세월이었다고 하기엔

뭔가가 빠져 있다

지금 마늘과 깍두기만 먹고 견딘다 해도

동굴 같은 내장 같은

애인의 목구멍을 다시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버릇처럼 애인의 얼굴을 만지려다 만다

휴지를 든 손이 변비 앞에서 멈칫하고 만다

엄마 가네 … 이제야 가네 자궁과도 같은 곳, 그곳으로

소설 - 김숨 ‘옥천 가는 날’

김숨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급한 서사보다 차와 같은 축약적인 공간에서 밀도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소설적 무대가 커진다고 주제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며, 작은 씨앗 하나가 뿌리와 열매에 대한 모든 걸 설명해주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늘의 우리는 집에서 태어나거나 죽지 않는다. 병원에서 첫 울음을 터뜨리고, 커튼 친 낯선 공간에서 병과 싸우다 사라진다. 죽음조차 편할 수 없는 현실이 폭력적일지 모르겠다. 그러니 살던 집에서, 고향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 모든 노인의 로망이 될 수밖에.

 김숨(38)의 단편소설 ‘옥천 가는 날’은 주검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운명적 한계를 쓸쓸하게 드러낸다.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참혹한 현실을 조명해왔던 작가의 촉수는 요즘 들어 삶과 죽음, 생명의 스러짐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김씨는 지난해 펴낸 소설집 『간과 쓸개』에서 육신의 사멸과 그에 따르는 삶의 비루함을 포착하며 ‘김숨의 안에는 노인 하나가 살고 있는 듯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현충일 연휴, 정숙과 애숙 자매는 엄마를 차에 태우고 강변북로에 오른다. 소풍을 가듯 나선 길의 목적지는 옥천. 엄마가 그렇게 가고파 하던 곳이다. 그런데 뭔가 묘하다. 늘어선 차량 행렬 탓인지 가는 길은 이상스러울 만큼 더디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정숙과 애숙의 대화는 어긋나 흐른다. 엄마는 말이 없다. 차 안이라는 공간은 연극의 무대처럼 이야기의 밀도를 키운다.

 작가가 흘려 놓은 묘한 분위기를 되짚다 독자는 문득 깨닫는다. 두 딸과 옥천 가는 길에 나선 엄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딸들이 말을 거는 엄마는 싸늘하게 식은 주검이라는 걸 알고는 서늘해지는 것이다.

 옥천은 엄마의 고향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식들이 떠나고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옥천 집을 지켰다. 그런 엄마가 옥천을 떠나야 했다. 이유는 자식 때문이다. 요양보호사자격증을 딴 막내딸 애숙은 요양급여를 받기 위해 엄마를 모셔와 치매 환자로 둔갑시킨다.

 “엄마에게 옥천은 자궁과 같은 곳이에요. 그곳을 떠나야 했던 엄마의 상실감은 탯줄이 잘리는 것과 같았겠죠. 옥천으로 돌아가는 것은 근원으로의 회귀인 셈이죠.”

 소설에서 새끼를 잡아먹는 어미 금붕어의 이미지는 ‘자궁으로의 귀향’에 비유한 옥천행과 교차하며 스토리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어느 날 수족관에 바글거리는 새끼 금붕어를 삼키는 어미를 보고 엄마는 “어미 뱃속만헌 무덤이 어데 있을까”라고 중얼댄다. 쌀뜨물 같은 죽을 빨대로 삼키며 연명할 때였다.

 “금붕어 이야기는 엄마가 자궁 속의, 어머니 몸 안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을 담아내는 상징적 설정이에요.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거죠. 엄마가 죽은 뒤 50~60년이 지나면 더 절절한 그리움이 생기지 않을까요. 어머니와 같아지는 순간을 애틋하게 바라는 거예요.”

 고작해야 엄지손가락만한 금붕어가 새끼를 쉰 마리 넘게 낳았다. 여섯 살짜리 여자애 같은 엄마의 몸에서 사람이 일곱이나 났다. 옥천 가는 날, 40㎏밖에 나가지 않는 엄마의 몸이 땅거미처럼 자꾸만 까라졌다. 엄마가 황천 가는 날이었다.

◆김숨=1974년 울산 출생. 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학동네 신인상. 소설집 『투견』 『침대』 『간과 쓸개』, 장편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물』 『노란 개를 버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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