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끝나면 만신창이" 김재범 꺼리는 선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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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기술이나 화끈한 마무리는 없다. 그래도 그는 소리 없이 강하다. 사람들은 그를 ‘만년 2등’으로 기억하지만 김재범(27·한국마사회)은 세계 최고의 유도 선수로 우뚝 섰다. 그는 런던에서 한국 유도를 노골드 위기에서 구해냈다.

김재범은 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을 모두 우승하는 ‘유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김재범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의 권유로 처음 도복을 입었다.

2004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에 유일한 금메달을 선사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대통령배대회 73㎏급에서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를 꺾고 우승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유도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김재범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10개월 앞두고 체급을 변경했다. 그의 원래 체급이었던 73㎏급에는 이원희와 왕기춘 등 쟁쟁한 선후배가 많았다. 81㎏급으로 체급을 올리자 몸에 무리가 왔다. 올림픽 기간에 간 수치가 정상치보다 두 배나 높아졌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경기에 나섰고 아쉽게 결승전에서 무릎을 꿇고 은메달을 따냈다.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될 것인가, 그냥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인가. 김재범은 선택의 기로에서 후자를 택했다.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체력과 기술에서 모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일궈냈다.

 그의 최대 강점은 빠른 기술과 따라올 수 없는 무한 체력이다. 선수들은 김재범 스타일의 상대와 붙는 것을 가장 꺼린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끈질기게 기술을 걸면서 상대를 귀찮게 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면 만신창이가 되기 때문에 김재범에게 지려면 일찍 지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실력이 늘자 성적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올림픽 2연패보다 힘들다는 세계선수권 2연패(2010년, 2011년)도 일궈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만년 2인자 설움을 벗어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적수가 없었다. 부동의 세계랭킹 1위는 그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김재범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그는 왼쪽 어깨를 거의 사용할 수 없다. 2007년 이후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 시달렸고 올림픽 8개월을 앞두곤 왼쪽 어깨가 탈골됐다. 아버지 김기용씨는 “병원에선 수술을 권했다. 그런데도 재범이는 훈련을 위해 물리치료로 버텨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재범에게 어깨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금메달 문턱에서 주저앉은 4년 전의 고통에 비하면. 그는 그 악몽을 다시 재현할 수 없었다. 어깨의 고통을 참아가며 이를 악물고 훈련을 한 이유다. 그 결과 그는 한국 유도의 유일한 희망으로 런던에서 우뚝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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