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일 해운항로 20년 '운임 동맹' 깨지나

중앙일보

입력

20년 가까이 한일간 컨테이너선 운항선사들간에 화물 나눠먹기 방식으로 유지돼온 운임동맹 체제가 회원사간 갈등으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회원사는 물량 배정이나 위약금 규정 등의 문제점을 들어 공정거래위원회에 시정을 요구하고 나서 당국의 개입도 불가피한 실정이다.

◇ 이상한 동맹〓1982년 한일간 항로에 취항하는 7개 해운회사들은 과당 경쟁에 따른 운임 하락을 막으려고 화물 공동관리제.화물 선적 상한제라는 협정을 맺었다. 그후 이 체체에 가입한 회원사는 고려해운.흥아해운.범양상선.조양상선.남성해운.천경해운 등 15개사로 늘었다.

이 체제는 과거 운송 실적을 감안해 회원사마다 많게는 한일간 전체 화물량의 18%에서 적게는 1%까지 화물량을 배정한 뒤 배정물량 이상의 운송 실적을 낸 회사에 위약금을 물리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열심히 노력해서 화물을 많이 실은 회사는 위약금을 물어야하는 이런 체제가 지속되면서 선사들간에 경쟁을 할 유인이 없어졌다.

◇ 갈등 재연〓그러나 선박 투입이 늘고 수지가 악화되면서 이런 '나눠먹기' 체제에 한계가 왔다.

한일 항로에 취항하는 컨테이너선 68척의 수송능력은 2백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에 달하지만 실을 화물은 그만큼 늘지 않고 있다. 한일항로의 화물 적재율은 1996년 37%에서 올들어 24%로 내렸다.

게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일간 운임 시세가 협정운임의 절반으로 떨어져 대부분 회원사들이 적자를 내면서 동맹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박을 새로 투입하려는 한 회사는 "할당량을 2%만 초과 운송해도 추가 운임 수입의 60%를 위약금으로 물어내내야 하는 규정은 지나치다" 며 공정위에 진정서를 냈다.

이처럼 현행 체제에 불만인 회사가 전체 회원사의 3분의 1 선이어서 이들 중 일부만 탈퇴해도 운임동맹은 유지가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해운업계에서는 "한일 항로의 특성상 동맹을 깨고 무한경쟁에 들어가면 공멸할 수 밖에 없다" 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근해수송협의회 변영환 사무국장은 "화물량을 후발 또는 작은 회사에 좀더 많이 배정하고 위약금을 차등 부과하거나 줄이는 등의 개선책을 강구하고 있다" 고 말했다.

홍승일 기자 hong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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