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당이 박지원 사당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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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주당이 어제 의원총회를 열어 박지원 지키기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2개 저축은행으로부터 1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박지원 원내대표에 대해 체포동의안이 청구되자 이를 정치검찰,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당력을 모아 저지키로 결의한 것이다.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128명의 거대정당이 일반 시민의 생각과 동떨어진 인식과 결론을 내린 것에 기가 막힐 뿐이다. 이제 민주당은 자기들끼리 쌓은 투쟁명분을 바탕으로 체포동의안의 국회 상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거나 부결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과 행동을 구사할 것이다.

 이날 민주당에서 나온 발언들을 보면 이 당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고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어 집권을 하겠다는 정당인지 의심스럽다.

 이해찬 당 대표가 “원내대표 잡아가는 것을 두 눈 뜨고 어떻게 보겠나. 자기 당 의원도 보호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을 보호하겠나”라고 말하자 한명숙 전 대표가 마이크를 받아 “박지원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지 말고 진영의 문제로 보자.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했다”고 호응했다. 뒤이어 공개발언에 나온 의원들은 박지원을 향해 충성맹세하듯 눈물까지 훔치며 결사옹위의 자세를 보였다.

 국민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대통령의 형도, 비서도, 측근도 줄줄이 구속됐는데 야당 원내대표는 소환조사조차 안 된다는 민주당의 당론은 집단최면 때문인가, 이해찬·박지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가. 박지원 지키기가 노무현 지키기 수준으로 신성시되어 버린 것 아닌가.

 그나마 초선 황주홍 의원이 자기 블로그에 “두려움을 떨치고 고민 끝에 글을 올린다. 박지원이 민주당이라는 등식은 무모하고 위험하다. 민주당이 원내대표를 기를 쓰고 에워싸면 다수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 민주당과 박지원은 지혜롭게 분리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멸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다”고 써 민주당에 최소한 한 명의 눈 밝은 의원이 있음은 보여줬다. 민주당의 한 지도급 의원은 박지원 원내대표가 자기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 때마다 앉아 있어 직언을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여당의 불통과 기득권을 비난하던 민주당이 어느새 이해찬·박지원의 눈치를 보는 불통정당, 기득권 정당, 사당(私黨)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