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암 … 죽음에서 사랑을 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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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신과 전문의로 일하던 다비드 세르방 슈레베르는 암과 투병하다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혜며, 그 이별의 순간을 가까운 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했다. [사진 중앙북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다
다비드 세르방 슈레베르 지음
권지현 옮김, 중앙북스
288쪽, 1만3000원

아름답거나 착하지 않아도 마음에 와 닿는 말이 있다. 진솔함 덕분이다. 깊거나 어렵지 않아도 곱씹고 되뇔 이야기가 있다. 울림이 커서다.

 프랑스 인지신경학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정신과 의사의 유작인 이 책이 그렇다.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눈부신 학문적 성취를 자랑하는 글이 아니다. 31세란 젊은 나이에 뇌종양 선고를 받고도 꾸준한 노력과 치료를 통해 20여 년간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항암』(문학세계사)을 낸 인간승리의 기록도 아니다.

 2010년 뇌종양이 재발해 13개월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뜬 그가 의사로서, 암 환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이자 세 남매의 아버지로서 ‘제대로 죽기’를 고심한 30편의 에세이인 까닭이라 귀하고 값지다.

 암이 재발한 뒤 지은이는 세 번의 수술과 한 차례의 방사선 치료, 두 차례의 ‘방사선 캡슐 프로토콜’과 한 차례의 혈관생성 억제치료를 받으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다. 의사에서 환자로 입장이 바뀌면서 자신의 낯선 모습과 만나는 것이다. 백혈구 백신주사를 맞으면서는 솔직과 겸손이 최고라는 것을 깨닫는다.

 간호사에게 “주사가 너무 아프니 팔 말고 다른 데 놔 달라”고 부탁한 뒤다. 그러면서 “아플 땐 아프다고 말하자. 아픈 건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라고 털어놓는다. “현실을 인정하되 절망했다고 멈출 필요는 없다”며 자신의 믿음대로 걷기와 섭식, 명상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계속하며 면역력을 키우려 애쓴다. 그러나 갈수록 병이 깊어져 죽음이 확실해지자 ‘성공적인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여기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큰 특혜다”고 담담한 자세를 취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 나 혼자만 죽는 것은 아니다. (…) 내 차례가 일찍 왔다는 것은 슬프지만 그렇다고 미칠 듯이 억울한 일도 아니다. (…) 여든 살까지 살아도 꿈과 열정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면 그것이 비통해야 할 일이다.”

 환자에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법, 간병을 하는 가족 친지들을 대하는 자세, 생의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 등을 찬찬히 이야기하며 지은이는 “인생의 참 의미를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란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는 “나의 변모는 암 선고를 받아 부딪쳐야 했던 힘든 시련들과 동시에 일어났다. 나의 나약한 모습, 죽음 앞에 고통과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발견한 뒤 삶과 사랑이라는 무한한 보물에 눈 뜨게 되었다”고 기억했다.

 “만약 내가 떠난 후 한 줄기 바람이 부드럽게 뺨을 스치거든 ‘어, 아빠다. 아빠가 볼에 뽀뽀 해줬어!’하고 생각해주기를”이란 말로 끝나는 책은 의연하며 깔끔하다.

 그러기에 암 투병하는 이들, 그리고 그들을 간병하는 이들에게는 위로와 의지가 되고, 웰 다잉(well-dying)을 생각해 본 이들에게는 각별하게 다가갈 책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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