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서 끼니는 찐빵 반 개, 13시간씩 노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114일 동안 중국 국가안전청에 강제 구금됐다 지난 20일 석방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왼쪽)씨가 25일 오전 서울 정동 사랑의 열매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김씨가 발언하는 동안 무선마이크를 들고 있다. [김도훈 기자]

구금 114일 만에 중국에서 풀려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가 구금 기간 중 중국 국가안전청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25일 밝혔다. 그는 이날 서울 정동 사랑의 열매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국가안정청에 구금됐을 당시 물리적 압박이 있었고 잠도 재우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검은 정장에 수척한 얼굴로 나타난 김씨는 체포 직후 18일간 묵비권을 행사하던 중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에 적대적 활동을 한 적이 없는 내게 왜 이렇게까지 하나, 재판 과정에서 이를 폭로해 중국의 인권상황을 알리겠다고 결심했었다”며 “중국은 그런 내게 가혹행위에 함구하는 게 귀환 조건이라며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공개했다. 김씨는 자신이 받은 가혹행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외교부가 중국 측에 해명 요구를 하는 등의 절차를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그는 구치소에서의 인권 유린 실태도 공개했다. 김씨는 “구치소 2곳에 있었는데, 첫 번째 단둥구치소에선 하루 13시간씩 노역을 하고, 끼니로 찐빵 반 개만을 먹었는가 하면, 25명이 20㎡의 협소한 공간에서 함께 잤다”며 “체중이 10㎏ 가까이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앞서 2001년 김씨와 같은 혐의로 중국 공안에 체포됐었던 천기원 목사는 조사 과정에서 “똑바로 불지 않으면 사형시킨다” 등과 같은 협박성 발언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김씨는 북한 당국이 자신의 체포에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함께 구금됐던 일행 3명 중 한 명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있었다”며 “수년간 중국에서 탈북자 지원 활동을 벌인 만큼 북한 측이 요구해 체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그러나 북한 고위급 인사의 기획 탈북을 시도하고 있었다는 보도에 대해선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외교통상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29일 체포된 김씨는 한 달 정도 뒤인 4월 26일 처음 선양 총영사관의 직원과 영사면담을 했다. 랴오닝(遼寧)성 국가안전청 단둥(丹東) 수사국에서 20분 정도 이뤄진 면담에서 김씨는 ‘가혹행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황으로 미뤄 가혹행위를 당한 것 같은 징후가 있었는데도 외교부는 바로 중국 측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고, 김씨의 가혹행위 주장이 나온 2차 면담 이후의 대응도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 측에 사실 관계 확인을 요청하며 엄중하게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6월 11일 영사면접 때 김씨로부터 중국 당국의 가혹행위에 대한 진술을 처음 들었다”며 “직후 중국 측에 사실 관계 확인을 요청했고 만약 사실이라면 엄중히 항의한다고 했다”고 했다.

 외교부는 6월 12일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가혹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고, 이후에도 6차례에 걸쳐 사실 관계 확인을 요구했으나 중국 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는 답변만 지속하고 있다. 외교부는 김씨의 귀국(20일) 직후인 23일 천하이(陳海) 주한 중국대사관 대리대사를 불러 진상조사를 재차 촉구했으나, 아직 중국 측의 답변이 오지 않은 상태다. 김씨가 가혹행위에 대한 추가 폭로를 할 경우 한·중 외교에도 미묘한 파장이 일 가능성도 있다. 최홍재 김영환석방대책위 대변인은 “중국 정부가 계속 (가혹행위에 대해) 부인하기에는 국제사회에서 부담을 느낄 것”이라며 “중국 정부의 태도에 따라 앞으로 김씨와 중국 당국이 진실게임 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회견장엔 김씨의 운동권 후배인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배석, 옆자리에서 김씨를 위해 손으로 마이크를 들어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