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회사원이 초저녁 어린이 쫓아가 몹쓸 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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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 19일 오후 8시30분쯤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학원 수업을 마치고 승합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던 A양(12)이 현관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자동문을 여는 순간 한 남자가 따라 들어갔다. 술에 취한 상태로 약 1㎞ 정도를 따라온 그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A양을 낚아채 엘리베이터에 탔다.

A양의 아파트는 현관 출입을 자동 통제하는 첨단 사설경비업체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아파트 입구에만 경비실이 설치돼 있을 뿐 동마다 경비실이 없었다. 3층에서 내린 그는 계단에서 A양의 옷을 벗기고 자신의 하의를 벗은 다음 성폭행을 시도했다. 비명을 지르던 A양의 입을 틀어막고는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다. 12살 소녀로선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A양을 구한 건 어머니 B씨(45)였다. B씨는 학원을 마친 딸을 마중하기 위해 아파트 밖에서 A양을 기다렸다. 길이 엇갈리며 딸을 못 봤던 B씨는 뒤늦게 아파트에서 난 비명 소리를 듣고 건물로 뛰어갔다. 계단에서 범인을 발견한 B씨는 손으로 그의 뒤통수를 때리며 막아 섰다. 당황한 범인은 곧바로 도망쳤다. 그는 바지만 입고 자신과 김양의 속옷을 집어든 채 달아났다.

 범인은 A양의 집에서 7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웃 주민이었다. A양의 아파트 주차장 쓰레기통에 속옷을 버린 범인은 자신의 집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현장에 놓고 간 자신의 신분증이 있던 가방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오후 9시쯤 현장으로 돌아왔다. 당시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이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다. 범인은 바지를 뒤집어 입고 속옷도 안 입은 걸 수상히 여긴 경찰관에 의해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25일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집에 가던 A양(12)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성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회사원 이모(27)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씨의 범행 시간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저녁, 장소는 피해자의 아파트 계단이었다.

 아동 성폭행은 일반인의 상식처럼 인적이 드문 시간대와 한적한 장소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히려 A양의 경우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등하교 시간대, 학교 주변이나 주택가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동 성범죄의 피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대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는 “아동 성범죄자들은 아이들이 주로 돌아다니는 시간에 범행을 저지른다”며 “범죄는 흔히 생각하는 늦은 밤보다 낮이나 해질 무렵 등 인적이 많은 등하교 시간에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범행 장소도 아동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아파트 등의 건물 내부가 많다”며 “범인들은 폐쇄회로TV(CCTV)나 건물 출입문 보안이 소홀한 틈을 이용한다”고 했다.

이현 기자 <2Str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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