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성의 홍콩뷰] ‘위안화 표시’ ETF 봇물 … 빨라지는 중국 자본시장 국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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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지난 1일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지 15년 되는 날이었다. 반환 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 홍콩에서는 광둥어를 사용하지만 본토인의 방문이 늘면서 보통화(普通話, 중국표준어)의 사용이 늘고 있다. 화폐도 마찬가지다. 예전과 같이 홍콩달러 체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홍콩 내 위안화 예금은 2년 반 만에 9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위안화 무역결제 금액이 크게 늘어나면서 개인보다는 기업의 위안화 예금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요즘에는 홍콩에서 은행에 계좌를 개설할 때 위안화 통장도 같이 만들 것인지 물어보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러나 홍콩에서 위안화를 가진 사람에게는 고민이 있다. 위안화를 보유한 경우 은행에 예금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활용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은행의 위안화 정기예금은 금리가 매우 낮다. 예전에는 위안화 절상에 대한 기대로 위안화 수요가 있었지만, 요즘같이 위안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때는 이러한 환차익 기대도 불확실하다. 같은 이유로 딤섬본드에 대한 인기도 과거만 못하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최근 내놓은 방안 중 하나가 ‘위안화 외국인적격 기관투자가(RQFII, RMB Qualified Foreign Institutional Investors)’ 제도다. RQFII는 외국인이 위안화로 중국 현지 발행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든 방안이다. 이를 통해 올해 초 1차로 중국 채권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고, 최근에는 2차로 중국 본토 A주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를 허용했다.

 또 지난주에는 2차 RQFII 방안의 일환으로 위안화 표시 본토 A주 ETF(RQFII ETF)가 발행됐다. 중국 최대운용사인 화샤기금(華夏基金)에서 본토 A주 ETF를 홍콩거래소에 상장했다. 기존에도 본토 A주 ETF가 있었지만, 이번 상장은 ‘위안화 표시’ ETF라는 점에서 최초다. 앞으로도 3개 중국 자산운용사가 추가로 RQFII ETF를 상장할 계획인데, 이들 4개 ETF만 해도 총 200억 위안(약 3조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RQFII ETF는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RQFII ETF의 거래수수료가 기존 A주 ETF의 3분의 1 수준으로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또 현물 주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파생상품에 기반한 기존 A주 ETF처럼 담보 리스크, 거래 상대방 리스크 등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RQFII 제도로 누가 수혜를 볼까. 최대 수혜자는 중국계 자산운용사라고 할 수 있다. RQFII 금융상품은 중국 자산운용사의 해외(홍콩)법인에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홍콩에 진출한 중국자산운용사는 이러한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ETF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RQFII 제도를 통해 위안화 국제화, 자본시장 개방, 자산운용사 국제화 등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다. 앞으로 위안화 국제화와 중국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RQFII 이외의 다른 방안도 나올 수 있다. 중국의 자본시장은 정부 주도하에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유재성 삼성자산운용 홍콩법인장(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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